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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1940-1950년대

춘향

노천명 · 1940-1950년대
검은 머리채에 동양 여인의 ‘별’이 깃들이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실라우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탁탁 치고 꼬끼오 하면 오실라우 옥빛이야 변할랍디어’ 옥가락지 위에 아름다운 전설을 걸어놓고 춘향은 사랑을 위해 형틀을 졌다 옥 안에서 그는 춘(椿) 꽃보다 더 짙었다 밤이면 삼경을 타 초롱불을 들고 향단이가 찾았다 춘향 ‘야 이 향단아 서울서 뭔 기별 없디야’ 향단 ‘기별이라우? 동냥치 중에 상동냥치 돼 오셨어라우’ 춘향 ‘야야 그것이 뭔 소리라냐 ―― 행여 나 없다 괄시 말고 도련님께 부디 잘해 드려라’ 무릇 여인 중 너는 사랑할 줄 안 오직 하나의 여인이었다 눈 속의 매화 같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붉은 사랑을 뱉어버리지 않았다 한양 낭군 이도령은 쑥스럽게 ‘사또’가 되어 오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주석

황계(黃鷄) 누런 닭, 곧 수탉. 춘향가의 '벽에 그린 황계 수탉이 홰를 치면 오시려오'라는 사설을 인용한 대목으로, 결코 오지 못할 시간을 빗댄 표현.

옥빛이야 변할랍디어 '옥빛(옥의 빛깔)이 변하겠습니까' 곧 변치 않는 절개를 다짐하는 말. 판소리 춘향가의 사설투를 따온 것이다.

형틀 죄인을 묶어 매질하던 형구. '형틀을 졌다'는 사랑을 지키려 형벌과 고난을 감내했음을 뜻한다.

춘(椿) 꽃 원문의 한자 '椿(춘)'은 참죽나무를 뜻하나, 여기서는 붉게 핀 동백꽃(冬柏)의 이미지로 읽혀 옥중 춘향의 짙은 정념을 비유한다.

삼경(三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셋째 부분, 곧 밤 11시에서 새벽 1시 무렵의 한밤중.

칼을 쓰다 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틀인 '칼(가枷)'을 목에 쓰는 것. 옥에 갇혀 형벌을 받는 처지를 이른다.

향단·이도령·사또 판소리 '춘향가'의 인물. 향단은 춘향의 몸종, 이도령은 연인, '사또'는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이도령의 신분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옥에 갇혀 칼을 쓰고도 사랑을 굽히지 않는 춘향을, 동백보다 짙고 눈 속 매화 같은 여인으로 그린다. 판소리 사설을 빌린 절개와 정념의 비장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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