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촉불과 손
1920년대

촉불과 손

정지용 · 1920년대
고요히 그싯는 손씨로 방 안 하나 차는 불빛! 별안간 꽃다발에 안긴듯이 올뺌이처럼 일어나 큰 눈을 뜨다. * 그대의 붉은 손이 바위틈에 물을 따오다, 산양(山羊)의 젖을 옮기다, 간소(簡素)한 채소(菜蔬)를 기르다, 오묘한 가지에 장미(薔薇)가 피듯이 그대 손에 초밤불이 낳도다.

주석

그싯는 손씨 성냥 따위를 긋는 솜씨. '손씨'는 손으로 하는 솜씨.

올뺌이 '올빼미'의 옛 표기.

산양(山羊) 산에 사는 염소, 또는 염소 일반.

간소(簡素) 꾸밈없이 수수하고 소박함.

채소(菜蔬) 밭에 가꾸어 먹는 나물과 푸성귀.

초밤불 초저녁에 처음 켜는 불, 곧 첫 촛불. '초밤'은 초저녁.

심상·해설

어둠 속에서 성냥을 그어 켠 촛불 하나가 방을 가득 채우고, 그 일을 해내는 그대의 붉은 손이 물을 긷고 젖을 옮기고 채소를 기르는 손길처럼, 가지 끝에 장미가 피듯 첫 불꽃을 피워 내는 따뜻한 광경이 떠오른다.

정지용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