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석류
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주석
상(上)달 음력 시월을 달리 이르는 말.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던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이다.
홍보석 붉은빛의 보석, 곧 루비. 석류 알의 투명하게 붉은 빛깔을 비유한 것이다.
신라천년 약 천 년간 이어진 신라 왕조. 석류 알을 비추어 보며 신라의 푸른 하늘을 떠올리는 고전적·동양적 정취를 환기한다.
녀릿녀릿 여릿여릿. 매우 보드랍고 연약한 모양.
심상·해설
입춘 무렵 밤, 장미처럼 피어오른 숯불 곁에서 홍보석 같은 석류 알을 맛보며, 지난 시월 시작된 사랑과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함께 꿈꾸는 영롱한 정취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