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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1920년대

비로봉

정지용 · 1920년대
백화(白樺)수풀 앙당한 속에 계절(季節)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육체(肉體)없는 적막(寂寞)한 향연장(饗宴場) 이마에 스며드는 향료(香料)로운 자양(滋養)! 해발(海拔)오천(五千)피이트 권운층(卷雲層)우에 그싯는 성냥불! 동해(東海)는 푸른 삽화(揷畵)처럼 움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옴겨 간다. 연정(戀情)은 그림자 마자 벗쟈 산드랗게 얼어라! 귀뜨람이 처럼.

주석

백화(白樺) 자작나무. 고산지대에 자라며 흰 껍질이 특징이다.

권운층(卷雲層) 높은 하늘에 새털처럼 펼쳐지는 구름층. 산정이 그 구름층 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누뤼 우박의 옛말. 우박 알이 벌떼처럼 흩날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비유했다.

앙당한 앙당그린. 추위에 움츠러들어 작게 오그라든 모양.

자양(滋養) 몸을 기르는 영양분. 여기서는 산정의 맑고 향기로운 공기를 가리킨다.

심상·해설

구름층보다 높은 비로봉 정상에서, 미동 없는 푸른 동해와 벌떼처럼 흩날리는 우박을 내려다보며 감정마저 산뜩하게 얼려 버리고 싶은 고고한 정신의 풍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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