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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음
1920년대

비음

이상화 · 1920년대
이 세기(世紀)를 물고 넣는, 어둔 밤에서 다시 어둠을 꿈꾸노라 조으는 조선의 밤- 망각(忘却) 뭉텅이 같은, 이 밤 속으론 햇살이 비치어 오지도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배부른 군소리로 들리노라 낮에도 밤-밤에도 밤- 그 밤의 어둠에서 스며난, 두더지 같은 신령은, 광명(光明)의 모꼬지란 이름도 모르고 술 취한 장님이 머-ㄴ 길을 가듯 비틀거리는 자국엔, 핏물이 흐른다!

주석

물고 너흐는 '너흐다'는 물어뜯다·갉다의 옛말. 어둠이 시대를 물고 갉아먹는다는 뜻이다.

뒤직이 '두더지'의 옛 표기·방언. 어둠 속에 사는 눈먼 짐승으로 암담한 영혼을 빗댔다.

목거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잔치·모임을 뜻하는 옛말(모꼬지). '광명의 목거지'는 빛의 향연을 이른다.

비음 제목 '비음(빛음)'은 햇살·광명이 비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빛이 끊긴 어둠과 대조를 이룬다.

심상·해설

낮에도 밤뿐인 망각의 어둠 속, 햇살 한 줄기 들지 못하는 조선의 밤이 펼쳐진다. 빛의 잔치를 모른 채 술 취한 장님처럼 비틀거리는 영혼의 발자국마다 핏물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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