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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밤
1930년대

한 개의 밤

이상 · 1930년대
여울에서는도도한소리를치며 비류강이흐르고있다. 그수면에아른아른한자색층이어린다. 십이봉봉우리로차단되어 내가서성거리는훨씬뒤까지도이미황혼이깃들어있다. 으스름한대기를누벼가듯이 지하로지하로숨어버리는하류는검으틱틱한게퍽은싸늘하구나. 십이봉사이로는 빨갛게물든노을이바라보이고 종이울린다. 불행이여 지금강변에황혼의그늘 땅을길게뒤덮고도 오히려남을손불행이여 소리날세라신방에창장을치듯 눈을감는자나는 보잘것없이낙백한사람. 이젠아주어두워들어왔구나 십이봉사이사이로 하마별이하나둘모여들기시작아닐까 나는그것을보려고하지않았을뿐 차라리초원의어느한점을응시한다. 문을닫은것처럼캄캄한색을띠운채 이제비류강은무겁게도도사려앉는것같고 내육신도천근 주체할도리가없다.

주석

비류강(沸流江) 평안남도를 흐르는 강. 대동강의 지류로, 고구려 건국 설화의 비류국과 이름이 통한다.

십이봉(十二峰) 강을 둘러싼 열두 개의 봉우리. 평안도 성천의 무산 십이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자색(紫色) 자줏빛.

창장(窓帳) 창문에 치는 휘장, 커튼.

낙백(落魄) 넋을 잃음. 또는 세력이나 살림이 줄어 보잘것없이 됨.

심상·해설

열두 봉우리에 갇힌 강물 위로 자줏빛 노을이 스러지고 종소리가 울리는 황혼, 어둠에 잠겨 천 근처럼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의 불행이 강물처럼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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