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실제 1
조그만 시인이여 어찌 내앞에와 서는가
내앞에와서 무슨말을 써보려는가
아프리카의 탁터져 끝없는벌판에
우거진숲그늘과 촬촬거리는 시냇물이그리워
내눈이 눈물을 흘린다고 마치
계집애의 사랑을잃고 가슴짜내어우는
두볼여윈 시인의얼굴로 내낯을 그리려는가
네 스스로의 달콤한설움을 버리고
나의가슴을 네가슴에 받아들이여
나의 굵은말을 네말을삼으라 시인이여
주석
실제 (失題) '제목을 잃음', 곧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은 작품이라는 뜻. 여러 편이라 번호를 붙였다.
탁터져 막힘없이 시원하게 탁 트여. 끝없이 넓게 펼쳐진 모양.
촬촬거리는 물이 잇따라 흐르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의성어.
굵은말 여리고 감상적인 말이 아닌, 크고 굳센 말. 사내답고 힘 있는 시어를 뜻함.
심상·해설
아프리카의 끝없는 벌판과 우거진 숲을 그리워하는 굵은 목소리가, 사랑 잃고 우는 여린 시인에게 달콤한 설움을 버리고 크고 굳센 말을 받으라 이르는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