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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서
1900-1910년대

후서

임화 · 1900-1910년대
이 책 속엔 이때까지 발표된 내 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수록되었다. 그중엔 발표된 가운데서도 부득이 빼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있으며, 또한 미발표대로 들어간 것도 있으나, 내가 작품 위에서 걸어온 정신적 행정을 짐작하기엔 과히 부족됨이 없을 줄 안다. 실상은 지난 가을에 처음 어느 친구로부터 이때까지 쓴 작품을 모아 출판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즐거운 권유를 받았을 때, 비로소 사산(四散)된 구고(舊稿)들을 모으기 비롯하여 한 권이 되었으나, 그간의 여러 가지 형편으로 초지(初志)를 이루지 못하고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었다. 현해탄이란 제(題) 아래 근대 조선의 역사적 생활과 인연 깊은 그 바다를 중심으로 한 생각, 느낌 등을 약 이삼십 편 되는 작품으로 써서 한 책을 만들어볼까 하였다. 이 가운데 맨 뒤에 실린 바다가 많이 나오는 일련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재능의 부족과 생각의 미숙 등 외의 여러 가지 곤란에 부닥쳐, 끝까지 써나갈 용기와 자신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 할 수 없이, 그 전에 한 권에 모았던 가운데서 얼마를 빼고 새로 쓴 작품과 어울러서, 이 한 책이 된 셈이다. 편순(編順)은, 대략 연대순으로 하였는데, 그렇다고 반드시 발표 연월을 고사(考査)하여 차례를 매지도 않았다. 이 중엔 약간 그런 의미의 연대는 어긋나는 곳이 한두군데 있으나 전체로서 이해를 방해할 만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다. 단지 「네거리의 순이(順伊)」로부터 「세월」에 이르는 동안 내 작품 경향 발전상 한 개 새 시대였다고 볼 수 있는 몇 작품이 들지 않았다. 그 밖에도 「네거리의 순이(順伊)」 한 편으로 그 때 내 정신과 감정(感情)생활의 전부를 이해해 달라 함은 좀 유감되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세월」에서 「암흑(暗黑)의 정신(精神)」 그러고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에 이르는 한 시기로부터, 그 뒤의 한두 번 변한 내 작품 경향을 이해하기엔 충분한 작품이 거의 전부 모여 있다. 맨 끝에 실린 「바다의 찬가(讚歌)」는 이로부터 내가 작품을 쓰는 새 영역의 출발점으로서 특히 넣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더 이런 경향의 작품을 넣으려 하였으나, 매수도 너무 많고 하여 일후 다행의 다시 작품집을 하나 더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요행을 바라고 욕심을 덮어두어 버렸다. 자꾸 변명 같아서 구구하지만 하나 더 미진한 점을 말하면 「네거리의 순이(順伊)」 이전 내 전향기의 작품과 그보다도 전, 어린 다다이스트이었던 시기의 작품을 넣고 싶었다가 구할 수도 없고 초고(草稿)도 상실되어 못 넣은 것이다. 이것은 내 지나간 청춘과 더불어 영구히 돌아오지 않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생각하면 쓸 때에 그렇게 열중했던 소위 노력의 소산이란 것이 뒷날 돌아보면 이렇게 초라한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느니보다도 일종 두려움이 앞을 선다. 내 자신이 이럴 바에야 하물며 인연 없는 제군에게 있어선 이 가운데 단 한편이라도 나의 이름과 더불어 기억되리라고는 차마 믿을 수가 없다. 단지 바라는 것은 나의 앞날을 위하여 매운 비판의 회초리로 이 작품들이 읽혀짐을 열망할 따름이다. 끝으로 일년 넘어 이 책의 탄생을 위하여 노력해주신 동광당 이남래(李南來) 형과, 일산(逸散)된 원고들을 모아준 젊은 우인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이들 없이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가 도저히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난잡한 글을 일일이 한글로 고쳐주신 이극로(李克魯) 씨에게 삼가 후의를 감사하는 바이다. 정축(丁丑) 동짓달, 합포(合浦)에서 저자(著者) 식(識)

주석

현해탄 부산과 일본 규슈 사이의 바다. 임화의 시집 제목이자 식민지 시절 도일의 길목.

구고(舊稿) 예전에 써 둔 원고.

초지(初志) 처음에 품은 뜻.

전향기 사상이나 문학적 입장을 바꾸어 가던 시기.

다다이스트 기존 질서와 형식을 부정한 전위 예술 운동 다다이즘을 따르던 사람.

동광당 이 시집을 펴낸 출판사 이름.

이극로 한글학자(1893~1978). 조선어학회를 이끌어 한글 맞춤법 통일에 힘썼다.

정축(丁丑) 동짓달 정축년(1937년)의 음력 11월.

합포(合浦)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 일대의 옛 이름.

저자(著者) 식(識) '지은이 적음'이라는 뜻의 맺음말. '식(識)'은 글을 적어 기록함을 이른다.

심상·해설

시집 『현해탄』을 엮어내며 지난 작품과 청춘을 돌아보는 저자의 겸허한 후기다. 초라함과 두려움을 솔직히 고백하면서도 매운 비판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담담한 자기 성찰이 배어 있다.

낭독 지시

Style: 시집 후기를 들려주듯 차근하고 겸허하게, 회한 어린 대목은 살짝 낮추고, 감사의 끝맺음은 정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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