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아미
향수(鄕愁)에 철나면 눈썹이 기나니요
바다랑 바람이랑 그 사이 태어났고
나라마다 어진 풍속에 자랐겠죠.
짙푸른 깁장(帳)을 나서면 그 몸매
하이얀 깃옷은 휘둘러 눈부시고
정녕 「왈츠」라도 추실란가봐요.
햇살같이 펼쳐진 부채는 감춰도
도톰한 손결야 교소(驕笑)를 가루어서
공주의 홀(笏)보다 깨끗이 떨리오.
언제나 모듬에 지쳐서 돌아오면
꽃다발 향기조차 기억만 서러워라
찬 젓대소리에다 옷끈을 흘려보내고.
촛불처럼 타오른 가슴속 사념(思念)은
진정 누구를 아끼시는 속죄(贖罪)라오
발 아래 가득히 황혼이 나우리치오
달빛은 서늘한 원주(圓柱) 아래 듭시면
장미(薔薇) 쪄 이고 장미 쪄 흩으시고
아련히 가시는 곳 그 어딘가 보이오.
주석
아미(蛾眉) 누에나방의 더듬이처럼 가늘고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 미인, 특히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깁장(帳) 비단으로 만든 장막이나 휘장. '깁'은 곱고 가는 비단을 뜻한다.
교소(驕笑) 교태 어린 아름다운 웃음. 여인의 곱고 매혹적인 미소를 가리킨다.
홀(笏) 옛날 신하가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좁고 긴 패. 여기서는 여인의 손이 홀처럼 정갈하고 단아함을 견준 것이다.
모듬 여럿이 모이는 모임, 회합. 화려한 사교의 자리를 가리키는 옛 표현이다.
젓대 대금 같은 가로로 부는 전통 관악기. '찬 젓대소리'는 서늘하고 애잔한 피리 소리를 뜻한다.
원주(圓柱) 둥근 기둥. 서양식 건물의 원기둥으로, 달빛 어린 이국적·환상적 공간을 자아낸다.
심상·해설
짙푸른 비단 장막을 나서는 하얀 깃옷의 여인이, 햇살처럼 펼친 부채와 떨리는 손결로 황혼 속에 서고, 달빛 어린 둥근 기둥 아래 장미를 흩뿌리며 아련히 사라지는 환상적 정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