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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의 시
1920년대

포르의 시

김억 · 1920년대
서운한 표(標)로 배 떠나는 그날엔 눈물 흘리며 전송(餞送)하릿가 그만 둬라 그만 둬라 해변(海邊) 바람 들세는 바람 눈물 따윈 마르고 말리라. ―포르 이 시(詩)를 곱게나 곱게 모아서는 지금(只今)은 있는 곳조차 모를 어린 한 때의 지나간 어린 날의 여러 벗에게 드리노라 이 따님은 돌아가서라 돌아가서라 애닯은 사랑에. 따님에게 수의(壽衣) 입혀라 수의(壽衣) 입혀라 꽃 같은 수의(壽衣)를. 사람들은 장사(葬事)하여라 장사하여라 밝아올 첫 녘에. 이 따님을 혼자 눕혀라 혼자 누여라 외로운 너울에. 이른 아침 한가롭게도 한가롭게도 노래를 놓으며 사람들은 “때가 오면 때가 오면 우리도 밟을 길 이 따님은 돌아가서라 돌아가서라 애닯은 사랑에” 그러하곤 들로 가더라 들로 가더라 어제도 오늘도. 서운한 표(標)로 이별(離別)의 키스나마 바닷가에 가서 던지오릿가. 그만 둬라 그만 둬라 해변(海邊)바람 들세는 바람 키스 따윈 날아나리라. 서운한 표(標)로 이별(離別)의 기념(紀念) 삼아 이 에이프런이나 흔드오릿가 그만 둬라 그만 둬라 해변(海邊)바람 들세는 바람 에이프런 따윈 날고 말리리라. 서운한 표(標)로 배 떠나는 그 날엔 눈물 흘리며 전송(餞送)하릿가. 그만 둬라 그만 둬라 해변(海邊)바람 들세는 바람 눈물 따윈 마르고 말리라 그럼 그럼 언제든지 언제까지 그리워하며 안 잊으릿가 옳지 옳지 그게 정(正)말이냐 진정(眞情)이냐 그러기에 너야말로 내 님이다. 첫 종(鍾)소리가 들리어라 “낳아 놓은 것은 마구 위의 예수 같은 아들……” 둘째 종(鍾)소리가 빗겨 울어라 “아아 기뻐라, 오늘부터는 나의 아내……” 한동안 있다가 셋째 종(鍾)이 울어라 “아아 섧기도 하여라, 이 번(番)은 죽음의 종(鍾)소리……” 고양이는 제 꼬리를 다른 고양이의 꼬린 줄 안다 우습기도 한 위안(慰安)이다, 무엇이 재미로워! 종(鍾)은 바람을 종(鍾)소리로 잘못 듣는다. 즉, 뜬 태양(太陽)이 가까운 청천(靑天)을 두드리는 소리다 사람은 제 혼(魂)을 사람이 지은 하느님인 줄 안다 언제 한 번(番)은 다 같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은 하느님이 아실 뿐이다. 지금(只今)이 새빨간 석조(夕照) 아래에 금색(金色)을 놓는 저녁바람 속에 밤의 공포(恐怖)에 나의 맘은 떨고 있다…… 지금(只今) 이 핼금한 달 아래에 금색(金色)을 놓는 저녁바람 속에 밤의 환락(歡樂)에 그대의 맘은 노래한다…… 그렇건만은 그렇건만은 이전(以前)날 우리들의 실내(室內)의 어두운 곳에서는 내 눈 동자(瞳子)의 불길에 백주(白晝)의 공포(恐怖)에, 그대의 맘은 떨고 있었다. 그렇건만은 그렇건만은, 이전(以前)날, 우리들의 실내(室內)의 어두운 곳에서는, 그대의 눈동자(瞳子)의 광명(光明)에 백주(白晝)의 환락(歡樂)에 나의 맘은 노래하였다. 나는 내 초적(草笛)보다 더 높은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나간 옛날에 내가 크레들[요람(搖籃)] 속에서 듣던 노래보다 더 높은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종달새와 여명(黎明)의 종루(鍾樓) 위에 흔들리우는 과실(果實)보다 더 높은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 잎사귀 위에 내리는 비의 노래보다 더 높은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 맘에 맞는 노래는 나무 잎사귀의 소곤거리는 노래보다도 오히려 더 곱다란 노래, 냇가의 버들을 흔드는 소천(小川)의 흐름보다도 더 섬세(纖細)한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갈매기와 종달새보다도 더 희미한, 또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는 아침의 조종초(弔鍾草), 그리하고 삼가는 듯이 부는 나의 초적(草笛)보다 더 가벼운 곡조(曲調)의 노래,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즐겨하는 노래는…… 적막(寂寞)하고도 임의(任意)로운 고움 가득한 곡조(曲調)로, 성모(聖母) 마리아가 예수에게 노래하여 소일(消日)거리 삼은, 또는 공(工)장 요셉이 입장난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꿈으로 인도(引導)하던 노래보다도 더더 뛰어나게 보드라운 노래, 그런 것이다. 오오 울림 가락의 희미한 그 가성(歌聲)이여, 세상(世上)에는 짝이 없는 그 노래는 이전(以前) 날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여러 번(番) 노래하던 노래, 그리하고 지금(只今)도 오히려 씨리아 소녀(少女)가 천변(泉邊)에서 깊어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한가롭게 거문고를 타며 적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노래 그것이다.

주석

포르(Paul Fort)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포르(1872~1960). '발라드의 왕'으로 불렸으며, 김억이 그 시를 번역·소개했다.

수의(壽衣)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 어린 따님의 죽음을 노래하는 장면에 쓰인다.

너울 여기서는 시신을 덮거나 가리는 천(베일·휘장)을 가리킨다.

에이프런(apron) 앞치마. 이별의 정표로 흔드는 물건.

마구 위의 예수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가리킨다. 베들레헴 탄생 설화.

백주(白晝) 대낮, 한낮.

석조(夕照) 저녁 햇빛, 저녁놀.

초적(草笛) 풀피리. 풀잎을 입에 대고 부는 소박한 악기로, 시인의 겸손하고 소박한 노래를 상징한다.

크레들(cradle) 요람. 아기를 누여 재우는 흔들침대.

조종초(弔鍾草) 조종(弔鍾, 죽음을 알리는 종)을 닮은 풀이라는 뜻으로, 종 모양 꽃인 은방울꽃 종류를 가리킨다.

성모(聖母)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아기 예수에게 노래를 불러 준 모습으로 등장한다.

요셉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를 기른 목수. 원문 '공(工)장'은 목수·장인을 뜻한다.

씨리아 소녀(少女) 시리아의 소녀. 샘가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국적 이미지.

베들레헴 예수가 태어난 유대 땅의 마을.

심상·해설

떠나는 배를 보내는 바닷가의 이별, 어린 따님의 장례, 탄생과 혼인과 죽음을 알리는 세 종소리가 이어지며 삶의 무상함과 풀피리처럼 여린 노래에 대한 동경이 신비롭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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