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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1920년대

금강산

한용운 · 1920년대
만이천봉(萬二千峰)! 무양(無恙)하냐 금강산(金剛山)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宗敎), 철학(哲學), 명예(名譽), 재산(財産) 그 외에도 있으면 있는 대로 태워 버리는 줄을 너는 모르리라 너는 꽃에 붉은 것이 너냐 너는 잎에 푸른 것이 너냐 너는 단풍(丹楓)에 취(醉)한 것이 너냐 너는 백설(白雪)에 깬 것이 너냐 나는 너의 침묵(沈默)을 잘 안다 너는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종작없는 찬미(讚美)를 받으면서 시쁜 웃음을 참고 고요히 있는 줄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너는 천당(天堂)이나 지옥(地獄)이나 하나만 가지고 있으려무나 꿈 없는 잠처럼 깨끗하고 단순(單純)하란 말이다 나도 짧은 갈고리로 강(江) 건너의 꽃을 꺾는다고 큰말하는 미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침착(沈着)하고 단순(單純)하려고 한다 나는 너의 입김에 불려오는 조각구름에 「키스」한다 만이천봉(萬二千峰)! 무양(無恙)하냐 금강산(金剛山)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

주석

만이천봉(萬二千峰) 금강산의 봉우리가 일만 이천 개라는 데서 온 말로, 금강산을 가리킨다.

무양(無恙)하냐 별 탈 없이 잘 있느냐. '양(恙)'은 병·탈을 뜻한다.

종작없는 말이나 태도에 일정한 줏대나 두서가 없는.

시쁜 마음에 차지 않아 시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심상·해설

사철 빛을 갈아입는 만이천봉을 향해 '진짜 너는 무엇이냐'를 묻고 침묵의 단순함을 권하며, 그 입김에 실려 오는 조각구름에 입맞추는 화자의 깊은 성찰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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