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분수
1930년대

분수

윤곤강 · 1930년대
다만 홀로 외롭게 슬픈 마음이기에 밤도 깊어 자지러지는 이 거리로 왔다 분수가 푸른 불꽃을 불어올리는 거리 그 옆에서 언약도 없는 사람을 나는 기다린다 푸른 반달이 기울어진 하눌을 향하여 구슬처럼 불꽃처럼 타오르는 물줄기 가슴속 외론 시름에 지는 한숨처럼 슬픈 소리를 하면서 떨어지는 물줄기 온데 간데 모르게 다가온 시름이 끝없는 마음의 층층다리를 기어올라간다 눈동자 속 저도 모르게 고인 눈물처럼 소리없이 떨어져 흩어지는 물줄기 밤의 늪을 걸어가는 지친 바람처럼 가벼웁게 불려서 스러지는 물줄기 얼굴도 모습도 없는 슬픔이기에 이 한밤 보이지 않는 발자취를 마음은 가늠한다 마음속 헛된 꿈에 타는 불꽃처럼 불똥도 없이 불똥도 없이 가라앉는 물줄기 동아배암의 꼬리우는 소리처럼…… 송장 우에 스러지는 잦은 탄식처럼……

주석

층층다리 여러 층으로 된 계단(층층계). 끝없이 이어진 마음의 단계를 비유한다.

동아배암 '동아'는 굵고 길다는 뜻으로, 동아뱀은 굵직한 큰 뱀(구렁이)을 이른다. 분수 떨어지는 소리를 구렁이가 우는 소리에 빗대었다.

심상·해설

깊은 밤, 푸른 불꽃처럼 솟구치는 분수 옆에서 기약 없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구슬처럼 타올랐다가 눈물처럼 흩어져 가라앉는 물줄기마다 형체 없는 슬픔과 한숨이 어리고, 분수 떨어지는 소리는 구렁이 울음과 송장 위의 탄식처럼 음울하게 잦아든다.

윤곤강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