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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조선의 남아여!
1930년대

오오, 조선의 남아여!

심훈 · 1930년대
-- 백림(伯林) 마라톤에 우승(優勝)한 손(孫), 남(南)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傳)하는 호외(號外)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形容) 못할 감격(感激)에 떨린다! 이역(異域)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心臟)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이천삼백만(二千三百萬)의 한 사람인 내 혈관(血管)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 ○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鼓膜)은 깊은 밤 전승(戰勝)의 방울 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침울(沈鬱)한 어둠 속에 짓눌렀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 ○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祖國)의 전승(戰勝)을 전(傳)하고자 마라톤 험(險)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絶命)한 「아테네」의 병사(兵士)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勇敢)하였던 선조(先祖)들의 정령(精靈)이 가호(加護)하였음에 두 용사(勇士) 서로 껴안고 느껴느껴 울었으리라. ○ ○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全世界)의 인류(人類)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이제도 이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弱)한 족속(族屬)이라고 부를터이냐!」

주석

백림(伯林)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자 음역.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다.

손(孫), 남(南) 양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과 3위를 한 남승룡 선수.

첩보(捷報) 싸움이나 경기에서 이겼다는 소식, 승전보.

호외(號外) 큰 사건이 있을 때 정기 발행 외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

이천삼백만(二千三百萬) 당시 조선 민족 전체의 수효를 이른 말.

고토(故土) 고향 땅, 조국의 땅.

거화(炬火) 횃불. 여기서는 올림픽 성화를 가리킨다.

「아테네」의 병사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의 승전을 알리려 아테네까지 달려가 숨졌다는 전령 페이디피데스의 전설. 마라톤 경기의 유래.

절필(絶筆) 붓을 놓고 다시 글을 쓰지 않음, 또는 생애 마지막으로 쓴 글. 심훈은 이 시를 쓰고 곧 세상을 떠나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심상·해설

한밤중 손기정 우승을 알리는 호외 뒷장에 떨리는 손으로 붓을 달리는 시인의 모습과, 식민지의 짓눌린 하늘이 올림픽 횃불처럼 화다닥 밝아 오는 환희가 격정적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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