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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의 로맨티시즘
1900-1910년대

해협의 로맨티시즘

임화 · 1900-1910년대
바다는 잘 육착한 몸을 뒤척인다. 해협 밑 잠자리는 꽤 거친 모양이다. 맑게 갠 새파란 하늘 높다란 해가 어느새 한낮의 카브를 꺾는다. 물새가 멀리 날아가는 곳, 부산 부두는 벌서 아득한 고향의 포구인가! 그의 발밑, 하늘보다도 푸른 바다, 태양이 기름처럼 풀려, 뱃전을 치고 뒤로 흘러가니, 옷깃이 머리칼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아마 그는 일본 열도(열도)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는 게다. 흰 얼굴에는 분명히 가슴의 ‘로맨티시즘’이 물결치고 있다.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동경(동경),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 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청년의 가슴은 바다보다 더 설레었다. 바람 잔 바다, 무더운 삼복의 고요한 대낮, 이천오백 돈(돈)의 큰 기선이 앞으로 앞으로 내닫는 갑판 위, 흰 난간 가에 벗어젖힌 가슴, 벌건 살결에 부딪치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한가! 그를 둘러 산 모든 것, 고깃배들을 피하면서 내뿜는 고동 소리도, 희망의 항구로 들어가는 군호 같다. 내려앉았다 떴다 넘노니는 물새를 따라, 그의 눈은 몹시 한가로울 제 뱃머리가 삑! 오른편으로 틀어졌다. 훤히 트이는 수평선은 희망처럼 넓구나! 오오! 점점이 널린 검은 그림자, 그것은 벌써 나의 섬들인가? 물새들이 놀라 흩어지고 물결이 높다. 해협의 한낮은 꿈 같이 허물어졌다. 몽롱한 연기, 희고 빛나는 은빛 날개, 우뢰 같은 음향, 바다의 왕자가 호랑이처럼 다가오는 그 앞을, 기웃거리며 지내는 흰 배는 정말 토끼 같다. ‘반사이!’ ‘반사이!’ ‘다이닛……’ 이등 캐빈이 떠나갈 듯한 아우성은, 감격인가? 협위인가? 깃발이 ‘마스트’ 높이 기어 올라갈 제, 청년의 가슴에는 굵은 돌이 내려앉았다. 어떠한 불덩이가, 과연 층계를 내려가는 그의 머리보다도 더 뜨거웠을까?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애를 부르는, 남도 사투리, 오오! 왜 그것은 눈물을 자아내는가? 정말로 무서운 것이…… 불붙는 신념보다도 무서운 것이…… 청년! 오오, 자랑스러운 이름아! 적이 클수록 승리도 크구나. 삼등 선실 밑 동그란 유리창을 내다보고 내다보고, 손가락을 입으로 깨물을 때, 깊은 바다의 검푸른 물결이 왈칵 해일처럼 그의 가슴에 넘쳤다. 오오, 해협의 낭만주의여!

주석

반자이(萬歲) 일본말로 '만세'. 군국주의 일본의 환호 구호로, 식민지 청년에게는 위압으로 들린다.

다이닛(大日本) '대일본(大日本)'을 외치다 끊긴 소리. 제국 일본을 떠받드는 구호의 첫머리다.

마스트(mast) 배의 돛대. 깃발이나 신호를 다는 기둥으로, 여기서는 일장기가 오르는 자리다.

현해탄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식민지 지식 청년이 유학과 노동을 위해 건너던 길목으로, '해협'이 이를 가리킨다.

심상·해설

현해탄을 건너는 청년의 가슴에 예술과 진리를 향한 꿈이 물결치다가, 군국의 함성과 삼등 선실의 가난한 동포 사이에서 벅찬 희망과 무거운 슬픔이 해일처럼 교차한다.

낭독 지시

Style: 바다처럼 일렁이는 호흡으로, 희망에 부풀다 일본 구호 대목에서 차갑게 굳고, 마지막 외침은 격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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