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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1930년대

피

윤곤강 · 1930년대
붉은 피는 돌아간다, 가슴속을 미친 듯 용솟음치며 돌아간다 목숨의 한 가닥 한 가닥을 이어나가는 사이클이여 스위치를 누르면 돌아가는 벨트처럼 미더웁게 뛰며 돌아가는 피 돌과 돌 쇠와 쇠가 마주치듯 오직 한 줄기 불타는 넋이여 불꽃은 살별처럼 날은다 가슴속에 에네르기가 끓어올라 보일러는 안타까웁게 노래한다 피가 뛸 때 목숨도 뛰고 원수와도 싸워 이긴다 피가 멈춰질 때 목숨도 멈춰지고 원수는 나를 짓밟는다 피가 아까웁기에 피보다 목숨이 귀하고 목숨이 귀하기에 목숨보다 피가 아까운 것이다 피는 항상 새것을 탐하여 거품을 뿜으면서 낡은 페이지를 물들이며 간다 오오! 귀한 피 붉은 피 목숨보다도 목숨보다도 아까운 피……

주석

사이클(싸이클) 순환(cycle). 피가 끊임없이 온몸을 도는 혈액 순환을 가리킨다.

살별 꼬리별, 곧 유성(혜성). 여기서는 빠르게 튀는 불꽃을 비유한다.

에네르기이 에너지(energy)의 독일어식 표기 '에네르기'를 늘인 것.

보일러어 보일러(boiler)의 옛 표기. 피가 끓어오르는 가슴을 기계 장치에 빗댄 표현.

심상·해설

온몸을 미친 듯 도는 붉은 피를 벨트와 보일러가 돌아가는 기계의 동력에 빗대어, 피가 뛰는 한 원수와 싸워 이긴다는 뜨거운 생명력과 투지가 격정적으로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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