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꽃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쟎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北)쪽「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망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주석
동방(東方) 동쪽 지방. 흔히 우리나라 또는 동아시아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절망적 현실에 놓인 땅을 함축한다.
툰드라(tundra) 일 년 내내 땅속이 얼어 있는 북극권의 황량한 동토 지대. 생명이 살기 가장 혹독한 곳을 뜻한다.
꽃망아리 '꽃망울'의 옛말 표기.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가리킨다.
꽃성(城) 꽃이 성처럼 무리 지어 타오르듯 피어 있는 곳. 절망 너머에 펼쳐질 생명과 희망의 세계를 형상화한 말이다.
심상·해설
비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땅과 눈 덮인 북극 동토에서도 끝내 빨갛게 피어나는 꽃, 바다 한복판에 불처럼 타오르는 꽃의 성이 강렬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