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국경의 밤
= 1부 =
1장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 갔다 -
오르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놓고
밤새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
(중략 ─ 전 72장의 장편 서사시)
72장
강 저쪽으로 점심 때라고
중국 군영에서 나팔소리 또따따 하고 울려 들린다.
주석
국경의 밤 1925년 간행된 김동환의 장편 서사시. 한국 근대 최초의 서사시로 꼽히며, 전 3부 72장으로 두만강 국경 마을의 비극적 사랑과 민중의 고난을 그린다. 여기에는 첫 장과 끝 장만 발췌해 싣는다.
재가승(在家僧) 머리를 깎되 절에 들지 않고 마을에서 가정을 이루어 사는 천민 집단. 작중 여주인공 '순이'가 속한 신분으로, 여진족의 후예로 설명된다. 다른 백성과 혼인·이주가 금지된 차별받는 계층이었다.
두만강(豆滿江) 함경도와 만주(간도)를 가르는 국경 강. 일제강점기 유랑민과 밀수꾼이 목숨 걸고 건너던 곳.
어유(魚油) 등잔 물고기 기름을 태워 불을 밝히던 등잔.
병남(丙南) 작중 순이의 남편 이름. 마적의 총에 맞아 죽는 소금 밀수 마부.
윤관(尹瓘) 고려의 장군. 함경도 일대(육진)에 9성을 쌓아 여진을 정벌한 인물로, 재가승의 유래를 설명하며 언급된다.
강안(江岸) 강기슭, 강가의 언덕.
심상·해설
함박눈 쏟아지는 두만강 국경의 칠흑 같은 겨울밤, 소금 밀수하러 강을 건넌 남편을 기다리며 물레질하던 손을 놓고 어유 등잔만 바라보는 젊은 아낙의 애타는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