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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1920년대

선구자

김동환 · 1920년대
눈이 몹시 퍼붓는 어느 해 겨울이었다, 눈보라에 우는 당나귀[驢馬]를 이끌고 두만강(豆滿江)녘까지 오니, 강(江)물은 얼고 그 위에 흰 눈이 석 자나 쌓였었다. 인적(人跡)은 없고, 해는 지고― 나는 몇 번이고 돌아서려 망설이다가 대담(大膽)하게 얼음장 깔린 강(江)물 위를 건넜다. 올 때 보니 북새(北塞)로 가는 이사(移徙)꾼들 손에 널따란 신장로(新長路)가 만들어 놓였다, 지난 밤 건너던 내 외곬길 위에다―

주석

선구자(先驅者) 남보다 앞장서 길을 개척하는 사람. 아무도 건너지 않은 얼어붙은 강을 처음 건넌 '나'를 가리킨다.

여마(驢馬) 당나귀를 뜻하는 한자어.

북새(北塞) 북쪽 변방, 북쪽 국경 지대.

신장로(新長路) 새로 난 넓고 긴 길. 한 사람이 낸 외길을 뒤따른 이들이 큰길로 다져 놓았음을 뜻한다.

외곬길 한 방향으로만 난 외길, 한 줄기 좁은 길.

심상·해설

해 지는 겨울, 석 자 눈이 쌓인 얼어붙은 두만강을 홀로 처음 건너간 발자국이 이튿날 이삿짐 행렬의 넓은 길이 되어 있는, 선구자의 발자취를 그린 비장하고 상징적인 설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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