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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기원
1940-1950년대

새해의 기원

변영로 · 1940-1950년대
을미(乙未)의 해도 그뮤나엔 가고 만다. 짖궂다 못하여 가고 만다 앙탈이 보람 없이 가고 만다. 어둡기 칠야(漆夜) 같던 을미(乙未)의 해 우중충키 담천(曇天) 같던 을미(乙未)의 해 뒤숭숭키 악몽(惡夢) 같던 을미(乙未)의 해 그예 그 어둠 두고 가려나 굳이 그 우중충 남기고 가려나 애써 그 뒤숭숭 쳐뜨리고 가려나 미움도 정(情)인양 간다니 서운할사 오는 해 사귀고 겪은 제 없어 반가움 앞을 서서 걱정 와락 되고녀. 그렇다고 지레 걱정 무엇하고 허투루 미리 근심 헛될진대 애닲다 다가 초민(焦悶) 헛 것이리. 애초에 갓이걸랑 눌러 쓰고 미리서 신이걸랑 들메하며 허리에 끈이걸랑 졸라매곤 오는 게 무엇이든 가림 없이 닥칠 것 닥치란듯 비킴 없이 인내(忍耐)와 인용(仁勇)으로 처할 것을. 지난 해 풀지 못한 우리 비원(悲願) 지난 해 씻지 못한 우리 수치(羞恥) 지난 해 달(逹)치 못한 우리 자립(自立) 허투른 망상(妄想)으로 풀을 것가 옛 버릇 고치지 않고 씻을 것가 사욕(私慾)에 눈 멀고서 이룰 것가 겨레여 가엾은 우리 겨레여 사념(邪念)뿐 혼백(魂魄) 없는 우리 겨레 언제나 어느 때나 깨려는가. 비노니 거듭 비노니 병신(丙申)의 해는 반성(反省)과 외신(畏神)의 해 되어지이다 결속(結束)과 용약(勇躍)의 해 되어지이다. ─1956. 1

주석

을미(乙未)·병신(丙申) 육십갑자의 해 이름. 을미년은 저무는 해(1955년), 병신년은 새로 오는 해(1956년)를 가리킨다.

그뮤나엔 '그믐께에는'의 옛 표기. 그믐은 음력 한 달의 마지막 날로, 한 해의 끝 무렵을 뜻한다.

칠야(漆夜)·담천(曇天) 칠야는 옻칠처럼 캄캄한 밤, 담천은 잔뜩 흐린 하늘. 암담했던 한 해를 비유한다.

들메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발에 매어 동이는 일.

초민(焦悶) 애를 태우며 괴로워함.

인용(仁勇) 어진 마음과 용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비원(悲願) 꼭 이루고자 하는 간절하고 비장한 소원. 여기서는 민족의 숙원을 가리킨다.

외신(畏神) 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함.

용약(勇躍) 용감하게 뛰어 나아감, 힘차게 약진함.

심상·해설

악몽처럼 어둡고 우중충했던 을미년을 떠나보내며, 갓을 눌러 쓰고 신끈과 허리끈을 졸라매듯 새해를 맞을 각오를 다진다. 풀지 못한 민족의 비원과 자립을 되새기며 병신년이 단결과 약진의 해가 되기를 비는 기원이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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