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소곡
쥬리안, 포칸스
어제는 귀밑을 지나간 탄환(彈丸),
오늘은 군모(軍帽)를 뚫고 갔어라.
명일(明日)은 나의 머리!
크라, 크라, 크라, 크라, 크라, ……
속사포(速射砲), 들을 바 없는 너의 소리여!
이빨에 손을 대고 헤는 해골(骸骨)은, 얼마.
쥬리안, 포칸쓰
피에 젖은 이마는 천막편포(天幕片布)의 아래에,
전우(戰友)는 그를 업고 지나가나니,
애닯다, 맞아 넘어진 육괴(肉塊)여, 어머님은 기다리련만.
죽음은 뚫으리라,
이 거대(巨大)한 이랑을
아아 그곳에 뿌린 종자(種子)는 사람의 아들.
래프
나의 길을 다만 한 번(番) 사랑은 지나갔어라.
‘그대는 언제는 또 한 번(番) 오겠나, 아아
머물렀던 기념(紀念)을 남기고 가거라.’
사랑은 글을 쓰나니 (쓰고는 간 곳 없어라)
‘아아 고통(苦痛)’ 이뿐이리라.
래프
오늘은 황금(黃金)의 미발(美髮),
명일(明日)은 은색(銀色)의 백발(白髮),
그 뒤에는 다만 견모(絹毛)의 대머리,
보아라, 사람아, 너의 운명(運命)을!
아낙크레온
나의 귀밑에는 회색(灰色)의 흰털이 오래여라,
다사로운 청춘(靑春)은 다 지나가고
나는 늙었노라, 나는 늙었노라,
아름다운 생활(生活)의 때는 짧아라,
지금(只今) 여년(餘年)은 죽음의 공포(恐怖)!
코리아나쓰
‘죽음의 애달픔이여,’
아니어라, 이리도 고운
‘젊은 몸으로 죽어서야’
그래도 말은 늙은이와 같아라.
‘세상(世上)의 쾌락(快樂)도 버리고’
목숨의 괴로움을 피(避)하면서,
‘혼가(婚嫁)의 즐거움도 없이’
아니어라, 혼가(婚嫁)의 설움도 모르고.
메레듸뜨
‘사랑은 신성(神聖)한가’ 물었노라,
‘그러하다’ 다 같이 대답하더라,
사랑의 표적(標跡)을 물을 때에는
사람은 다 같이 탄식(歎息)하더라.
몇 해를 지나서, 우리는 사랑을,
그 사랑의 눈물과 애닯음을
버릴 수가 있으랴?
아아 그러나 잊을 수는 없어라.
메레듸뜨
환락(歡樂)은 빠르고
애상(哀傷)은 늦어라,
설움은 뿌려라,
아름다운 사랑을.
해도 넘지 않아서
떠나는 사랑,
사랑을 알려노라,
설움아 내게 있어라.
주석
소곡(小曲) 짤막한 노래. 여기서는 여러 서양 시인의 짧은 시들을 옮겨 묶은 번역 모음의 제목.
쥬리안, 포칸스 프랑스 시인 쥘리앵 보캉스(Julien Vocance, 1878~1954). 제1차 세계대전을 짧은 시형으로 노래했다.
래프 원시의 작자명. 짧은 사랑·운명의 노래를 쓴 시인으로 옮겨졌다.
아낙크레온 고대 그리스 시인 아나크레온(Anacreon, 기원전 6세기). 술과 사랑, 늙음을 노래한 서정시인.
코리아나쓰 원시의 작자명(코리아너스). 요절과 죽음을 노래한 시로 옮겨졌다.
메레듸뜨 영국 소설가·시인 조지 메러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 사랑과 슬픔을 노래했다.
육괴(肉塊) 고깃덩이. 전장에서 총 맞아 쓰러진 병사의 주검을 처참하게 이르는 말.
혼가(婚嫁) 혼인. 장가들고 시집감.
여년(餘年) 앞으로 남은 생애. 여생(餘生).
심상·해설
전장의 탄환과 주검, 황금빛 머리가 백발로 스러지는 늙음, 한 번 지나가면 잡을 수 없는 사랑을 여러 서양 시인의 짧은 노래로 엮어,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