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해협
1920년대

해협

정지용 · 1920년대
포탄(砲彈)으로 뚫은듯 동그란 선창(船窓)으로 눈섶까지 부풀어 오른 수평(水平)이 엿보고, 하늘이 함폭 나려 앉어 큰악한 암닭처럼 품고 있다. 투명(透明)한 어족(魚族)이 행렬(行列)하는 위치(位置)에 홋하게 차지한 나의 자리여!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라ㅅ속 같이 소란한 무인도(無人島)의 각적(角笛)을 불고- 해협(海峽) 오전(午前) 두(二)시의 고독(孤獨)은 오롯한 원광(圓光)을 쓰다. 설어울 리 없는 눈물을 소녀(少女)처럼 짓쟈. 나의 청춘(靑春)은 나의 조국(祖國)!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세여! 항해(航海)는 정히 연애(戀愛)처럼 비등(沸騰)하고 이제 어드매쯤 한밤의 태양(太陽)이 피여오른다.

주석

선창(船窓) 배의 둥근 창문.

함폭 함뿍, 흠뻑. 가득히 내려앉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큰악한 커다란, 큼직한의 옛말·사투리.

어족(魚族) 물고기의 무리, 물고기 떼.

홋하게 홀가분하게, 거리낌 없이 가뿐하게.

각적(角笛) 뿔로 만든 피리, 뿔피리.

원광(圓光) 둥근 빛, 후광. 성상(聖像)의 머리 둘레에 둥글게 그리는 빛.

비등(沸騰) 물이 끓어오름. 감정이 들끓어 솟구침을 빗댄다.

한밤의 태양 한밤중에 떠오르는 태양. 청춘의 정열과 새 시대의 희망을 상징하는 역설적 이미지.

심상·해설

포탄 자국 같은 둥근 선창으로 부풀어 오른 수평선이 보이고 하늘이 암탉처럼 바다를 품은 오전 두 시, 망토 깃에 귀를 세운 청년이 고독을 후광처럼 쓴 채 청춘이 곧 조국이라 외치고, 항해가 연애처럼 끓어오르며 한밤의 태양이 솟는 벅찬 정경이 펼쳐진다.

정지용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