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새해
새해가 왔네.
지구가 처음 보는 위대한 새해, 탐욕의 지옥인 구세계가
무너지고 인의와 예의 새 세계의 터를 닦는 새해.
태평양의 물결에 잔잔함이 돌아오고 아세아의 천지에 부흥의 만세소리가 우렁차게 일어날 새해.
기뻐라. 나는 이 새해를 보았어라, 개벽 이래 처음 오는 위대한 새해를 노래하는 나의 행운이여.
그러나 1억의 동포여
이 해 새해는 또 땀을 많이 흘려야 할 해
농부는 논밭을 갈기에, 가꾸기에, 일구기에, 광부는 땅 속에서 파기에, 깨트리기에, 져내기에
공부(工夫)는 공장에서 갈기에, 두들기기에, 어부는 바다에서 그물치기에, 낚기에, 끌기에, 남, 녀, 노, 소 일억일심(一億一心), 쉬일 새 없이 흘리는 땀이 일본의 국토를 흠씬 적실때에――오직 그때에만이야.
영광의 승리는 오는 것이다. 이를 일러 1억 전투배치, 전력증강.
빛나는 새해 위대한 새해.
씩씩한 우리 아들들은 총을 메고 전장으로 나가고
어여쁜 우리 딸들은 몸빼를 입고 공장으로 농장으로 나서네.
말 모르는 마소까지도 나라 일 위해 나서는 오늘이 아닌가.
천년화평 도의(道義)세계를 세우랍신
우리 임금님의 명을 받자와
『예』, 『예』하고 집에서 뛰어나오는 무리
이날 설날에 반도삼천리도 기쁨의 일장기바다.
무한한 영광과 희망의 위대한 새해여.
주석
친일시 이 작품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기에 이광수가 조선인의 전쟁 협력을 부추기기 위해 쓴 친일 시이다. '나라·임금님·일본의 국토'는 모두 일본 제국과 천황을 가리킨다.
일억일심(一億一心) 일본과 식민지를 합한 인구 일억이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에 임하자는 일제의 총동원 구호.
전투배치·전력증강 온 국민을 전쟁 수행 체제에 배치하고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우자는 전시 동원 용어.
몸빼 일제가 전시에 여성에게 작업복으로 입게 한, 통이 넓고 발목을 졸라매는 바지.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도의(道義)세계 일제가 내세운 '도의의 세계 건설'이라는 선전 구호로, 대동아공영권의 명분으로 쓰였다.
일장기바다 온 거리가 일본 국기로 뒤덮인 모습. 전쟁 축하와 충성 동원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반도삼천리 한반도 전역을 이르는 말. '삼천리'는 우리 국토를 통틀어 가리키는 관용 표현이다.
심상·해설
새해 첫날, 농부·광부·직공·어부가 땀 흘리고 아들은 총을 메고 딸은 몸뻬를 입고 나서는 전시 동원의 풍경. 거리가 일장기로 뒤덮인 설날을 '위대한 새해'로 찬미하는 친일 선동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