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해조사
동방(洞房)을 찾아드는 신부(新婦)의 발자취같이
조심스리 걸어오는 고이한 소리!
해조(海潮)의 소리는 네모진 내 들창을 열다.
이 밤에 나를 부르는 이 없으련만?
남생이 등같이 외로운 이 서-ㅁ 밤을
싸고 오는 소리! 고이한 침략자(侵略者)여!
내 보고(寶庫)를, 문을 흔드는 건 그 누군고?
영주(領主)인 나의 한 마디 허락도 없이,
평원(平原)을 달리는 말굽 소리보다
한층 요란한 소리! 고이한 약탈자(略奪者)여!
내 정열(情熱)밖에 너들에 뺏길 게 무엇이료.
가난한 귀향살이 손님은 파리하다.
올 때는 왜 그리 호기롭게 몰려 와서
너들의 숨결이 밀수자(密輸者)같이 헐데느냐
오- 그것은 나에게 호소(呼訴)하는 말 못할 울분(鬱憤)인가?
내 고성(古城)엔 밤이 무겁게 깊어가는데.
쇠줄에 끌려 걷는 수인(囚人)들의 무거운 발소리!
옛날의 기억(記憶)을 아롱지게 수(繡)놓는 고이한 소리!
해방(解放)을 약속(約束)하든 그날 밤의 음모(陰謀)를
먼동이 트기 전 또다시 속삭여 보렴인가?
검은 벨을 쓰고 오는 젊은 여승(女僧)들의 부르짖음
고이한 소리! 발밑을 지나며 흑흑 느끼는건
어느 사원(寺院)을 탈주(脫走)해 온 어여쁜 청춘(靑春)의 반역(反逆)인고?
시들었던 내 항분(亢奮)도 해조(海潮)처럼 부풀어 오르는 이 밤에
이 밤에 날 부를 이 없거늘! 고이한 소리!
광야(廣野)를 울리는 불 맞은 사자(獅子)의 신음(呻吟)인가?
오 소리는 장엄(莊嚴)한 네 생애(生涯)의 마지막 포호(咆哮)!
내 고도(孤島)의 매태 낀 성곽(城郭)을 깨뜨려 다오!
산실(産室)을 새어나는 분만(分娩)의 큰 괴로움!
한밤에 찾아올 귀여운 손님을 맞이하자
소리! 고이한 소리! 지축(地軸)이 메지게 달려와
고요한 섬 밤을 지새게 하는고녀.
거인(巨人)의 탄생(誕生)을 축복(祝福)하는 노래의 합주(合奏)!
하늘에 사무치는 거룩한 기쁨의 소리!
해조(海潮)는 가을을 불러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잠드는 넋을 부르다. 오- 해조(海潮)! 해조(海潮)의 소리!
주석
해조(海潮) 바다의 밀물과 썰물, 곧 밀려오는 바닷물결 소리. 시 전체를 이끄는 핵심 심상이다.
동방(洞房)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르는 신방(新房). 조심스레 다가오는 소리를 신부의 발걸음에 빗대었다.
불 맞은 사자(獅子) 총에 맞은 사자.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는 비장한 존재로, 새 세상을 향한 부르짖음을 상징한다.
거인(巨人)의 탄생 낡은 성곽을 깨뜨리고 태어날 새로운 시대·새 생명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외딴 섬의 깊은 밤, 침략자처럼 들창을 흔드는 바닷물결 소리가 죄수의 발소리와 사자의 포효로 변하며 낡은 성곽을 깨뜨릴 새 시대의 탄생을 부르짖는 웅장한 환청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