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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1940-1950년대

일식

이육사 · 1940-1950년대
쟁반에 먹물을 담아 비쳐본 어린 날 불개는 그만 하나밖에 없는 내 날을 먹었다 날과 땅이 한줄 위에 돈다는 그 순간(瞬間)만이라도 차라리 헛말이기를 밤마다 정녕 빌어도 보았다 마침내 가슴은 동굴(洞窟)보다 어두워 설레인고녀 다만 한 봉오리 피려는 장미(薔薇) 벌레가 좀치렸다 그래서 더 예쁘고 진정 덧없지 아니하냐 또 어데 다른 하늘을 얻어 이슬 젖은 별빛에 가꾸련다.

주석

일식(日蝕) 달이 해를 가려 해가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 빛(희망)이 일시에 사라지는 절망적 상황의 은유로 쓰였다.

불개 전설에서 일식·월식을 일으킨다는 불개(火狗). 하늘의 개가 해나 달을 물어 먹어 어두워진다는 민간 설화에서 온 표현이다.

날 여기서 '날'은 해(日)를 가리킨다. '하나밖에 없는 내 날'은 단 하나뿐인 나의 태양, 곧 희망을 뜻한다.

좀치다 좀이 슬어 갉아먹다, 좀먹다. 피려던 장미가 속으로 갉아 먹혀 망가짐을 이른다.

심상·해설

먹물 담은 쟁반에 비친 해를 불개가 삼켜 버리고, 동굴보다 어두워진 가슴속에 벌레 먹은 장미가 피려는 절망 너머로 다른 하늘의 별빛을 꿈꾸는 비장한 정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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