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가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古城(고성)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墨畵(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염띄염 보이는 그림 쪼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네는 가시네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뺨 우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江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密告者(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주석
말매나물 들에서 캐 먹는 봄나물의 한 가지.
모매꽃 메꽃. 들에 피는 분홍빛 꽃으로, 부끄러워 붉어진 소녀의 두 뺨에 빗대었다.
씨레나무 물에 떠내려오는 땔나무(섶나무).
밀고자(密告者) 몰래 일러바치는 사람. 얼어붙는 강물조차 마을의 가난과 사정을 고해바치는 듯 무정하다는 표현이다.
심상·해설
옛 성처럼 돌담에 둘린 산기슭 마을, 황혼에 호롱불이 켜지고 젊은이는 돈 벌러 떠나며 늙은이만 다투는 가난한 겨울 농촌의 정경이 한 폭 수묵화처럼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