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실제
하늘이 높기도 하다
고무 풍선 같은 첫겨울 달을
누구의 입김으로 불어올렸는지?
그도 반넘어 서쪽에 기울어졌다
행랑 뒷골목 호젓한 상술집엔
팔려 온 냉해지처녀(冷害地處女)를 둘러싸고
대학생(大學生)의 지질숙한 눈초리가
사상선도(思想善導)의 염탄꾼 밑에 떨고 있나
라디오의 수양강화(修養講話)가 끝이 났는지?
마ㅡ장 구락부(俱樂部) 문간은 하품을 치고
빌딩 돌담에 꿈을 그리는 거지새끼만
이 도시(都市)의 양심(良心)을 지키나보다
바람은 밤을 집어삼키고
아득한 까스 속을 흘러서가니
거리의 주인공인 해태의 눈깔은
언제나 말갛게 푸르러 오노
주석
냉해지처녀(冷害地處女) 냉해로 흉년이 든 지방에서 가난을 못 이겨 도시로 팔려 온 처녀. 식민지 농촌의 참상을 보여준다.
사상선도(思想善導) 일제가 사회주의 등 불온 사상을 단속·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벌인 통제. '염탄꾼'은 그 끄나풀(밀정)을 뜻한다.
마ㅡ장 구락부(俱樂部) 마작(麻雀)을 즐기는 사교 클럽(club). '구락부'는 club의 음역어.
해태 시비와 선악을 가린다는 상상의 동물. 거리에 세워진 해태 석상을 가리키며, 도시의 양심을 상징한다.
심상·해설
첫겨울 달이 기운 식민지 도시의 밤, 팔려 온 처녀와 거지 아이가 뒷골목에 떨고 가스등 흐린 거리에 해태 석상의 눈만 푸르게 빛나는 음울한 도시 풍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