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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의 꽃
1930년대

성에의 꽃

윤곤강 · 1930년대
으슥한 마음의 숲그늘에 주린 승냥이 기척없이 서성거리고 바람이 울며예는 생각의 허공에 슬픔의 새떼 짝지어 울며갈 무렵 마루판은 얼음장보다 싸 ─ 늘한데 고향꿈 지닌 가슴엔 성에의 꽃이 피어 지울 수 없는 슬픔에 두 눈 비벼뜨고 창틈으로 넘겨보는 얼어붙은 달빛 눈더미를 솨 ─ 솨 ─ 불어 흩는 소리는 머 ─ ㄴ 고향길 더듬어온 매운 바람이냐 야윈 얼굴에 터럭이 쓸모없이 돋어 책상 우에서 맺은 꿈 갈갈이 부서졌다 한치나 자란 때끼인 열개 손톱으로 앙상한 가슴 한복판을 피나게 긁어봐도 외로움만을 반겨 안어들이는 버릇 ── 그밖엔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한 삶이니 푸로메듀스의 옛 가마귀 나의 운명아 내 가슴을 파먹어다오 원통히 파먹어다오

주석

성에의 꽃 추운 밤 유리창이나 표면에 얼어붙은 서리가 꽃 모양으로 핀 것. 차가운 현실 속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한다.

울며예는 '울며 지나가는'의 옛 표현. '예다'는 '가다'의 옛말.

눈뗌이 '눈더미'의 방언. 쌓인 눈 무더기.

푸로메듀스의 옛 가마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인간에게 불을 준 죄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까마귀로 표현)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이에 빗댄다.

심상·해설

얼음장 같은 마룻방에 홀로 누워 창에 핀 성에꽃 너머 얼어붙은 달빛을 바라보는 밤,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프로메테우스처럼 가슴을 파먹히는 고통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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