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일경초
나는 솔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팽이로 한 줄기 풀을 부질럿다
풀은 아모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업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슯어한다
부러진 풀은 영원(永遠)히 이어지지 못한다
내가 지팽이로 부질느지 아니하얏스면
풀은 맑은 바람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은(銀)가튼 이슬에 잠자고 키쓰도 하리라
모진 바람과 찬 서리에 꺽기는 것이야 엇지하랴마는
나로 말매암아 꺽거진 풀을 슯어한다
사람은 사람의 죽엄을 슯어한다
인인지사(仁人志士)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죽엄을 더욱 슯어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모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업는 한 줄기 풀을 슯어한다
주석
일경초(一莖草) 한 줄기의 풀. 가장 작고 하찮은 생명을 가리킨다.
인인지사(仁人志士) 어진 사람과 뜻이 굳은 선비. 흔히 나라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이른다.
심상·해설
소나무 그늘에서 무심코 꺾은 한 줄기 풀을 두고, 반항도 원망도 없이 스러진 작은 생명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성찰의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