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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20년대

마

남궁벽 · 1920년대
말님, 나는 당신이 웃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숙명(宿命)을 체관(諦觀)한 것 같은 얼굴로, 간혹(間或) 우는 일은 있으나, 그것은 좀처럼 하여서는 없는 일이외다. 대개(大槪)는 침묵(沈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순(溫順)하게 물건(物件)을, 운반(運搬)도 하고, 사람을 태워 가지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말님, 당신의 운명(運命)은 다만 그것뿐입니까. 그러하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외다. 나는 사람의 힘(力)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악(惡)을 볼 때, 항상(恒常) 내세(來世)의 심판(審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의 운명(運命)을 생각할 때, 항상(恒常) 당신도 사람이 될 때가 있고, 사람도 당신이 될 때가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십일년 사월 십육일)

주석

마(馬) 말(馬). 제목 「마」는 말을 가리킴. 묵묵히 일하는 말의 운명을 통해 윤회와 정의를 사색함.

체관(諦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 모든 것을 단념하고 받아들임. 달관(達觀)에 가까운 불교적 태도.

숙명(宿命)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피할 수 없는 운명.

내세(來世)의 심판(審判) 죽은 뒤 다음 생에서 받는 심판. 현세에서 다스릴 수 없는 악을 두고 사후의 정의를 바라는 생각.

당신도 사람이 될 때, 사람도 당신이 될 때 윤회(輪廻) 사상을 빌린 표현. 말과 사람이 서로 처지를 바꾸어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만물 평등과 인과응보를 암시함.

심상·해설

웃는 법 없이 숙명을 받아들인 듯 묵묵히 짐을 나르고 사람을 태워 달리는 말을 바라보며, 그 가여운 운명에서 윤회와 사후 심판의 정의를 곱씹는 명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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