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어느것이 참이냐
1920년대

어느것이 참이냐

한용운 · 1920년대
엷은사(紗)의 장막(帳幕)이 적은바람에 휘둘려서 처녀(處女)의꿈을 휩싸듯이 자최도 없는 당신의사랑은 나의 청춘(靑春)을 휘감음니다 발딱거리는 어린피는 고요하고맑은 천국(天國)의음악(音樂)에 춤을추고 헐떡이는 적은영(靈)은 소리없이떨어지는 천화(天花)의그늘에 잠이듭니다 가는봄비가 드린버들에 둘려서 푸른연기가되듯이 끝도없는 당신의 정(情)실이 나의잠을 얽습니다 바람을따라가려는 짧은꿈은 이불안에서 몸부림치고 강건너사람을 부르는 바쁜잠꼬대는 목안에서 그네를뜁니다 비낀달빛이 이슬에젖은 꽃숲풀을 싸락이처럼부시듯이 당신의 떠난 한(恨)은 드는칼이되어서 나의애를 도막도막 끊어놓았습니다 문밖의 시내물은 물결을보태려고 나의눈물을받으면서 흐르지않습니다 봄동산의 미친바람은 꽃떨어트리는힘을 더하려고 나의한숨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주석

사(紗) 얇고 성기게 짠 비단.

영(靈) 영혼·넋.

천화(天花) 하늘 꽃. 불교에서 부처의 설법 등에 감응하여 하늘에서 내린다는 꽃.

정(情)실 정(情)의 실. 임을 향한 정이 실처럼 이어져 '나'를 얽어맨다는 비유.

애 창자, 또는 마음속·애간장. '애를 끊다'는 몹시 슬퍼 마음이 찢어짐을 뜻함.

심상·해설

엷은 비단 장막처럼 청춘을 휘감는 임의 사랑과, 봄비에 어린 버들 연기처럼 잠을 얽는 정 속에서, 임이 떠난 한이 잘 드는 칼이 되어 애간장을 도막도막 끊는 봄밤의 정경이 그려진다.

한용운의 다른 작품

비슷한 심상의 다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