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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1920년대

모기

한용운 · 1920년대
모기여 그대는 범의 발톱이업고 코끼리의 코가 업스나 날카로운 입이 잇다 그대는 다리도 길고 부리도 길고 날개도 쩌르지는 아니하다 그대는 춤도잘추고 노래도잘하고 피의술도 잘먹는다 사람은 사람의피를 서로서로 먹는대 그대는 동족의피를 먹지아니하고 사람의피를 먹는다 아아 천하만세를 위하야 바다가티 흘리는 인인지사의피도 그대에게 맛겻거든 허물며 구구한 소장부에 쓸때업는 피야 무엇을 앗기리오

주석

인인지사(仁人志士) 어진 사람과 뜻있는 선비.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로운 인물을 이른다.

소장부(小丈夫) 도량이 좁고 변변치 못한 사내. 여기서는 화자가 자신을 낮추어 가리킨다.

피의 술 모기가 빨아 먹는 피를 술에 빗댄 표현.

심상·해설

성가신 모기를 나무라다가, 사람끼리 서로 피를 빠는 세태를 꼬집는 데로 나아간다. 의인의 피마저 흩뿌려지는 세상에서 자기 같은 소인의 피쯤 아까울 것 없다는 자조가 쓴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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