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정희에게
공기는 높고맑아 새암물 약이되고
친구같은 아버지와 동기같은 어머니라
집웅이야 족으마하던 다시없어 뵈더라
시내ㅅ물 소리딸아 짓거리는 말소리며
새악시 우슴에 굴러가는 거름이매
어느덧 접어드는길을 잊고지나 가더라 …(안양사도중(安養寺道中))…
어제야 알았던가 십년(十年)을 사굇던가
뷔인말 하지아녀 마음서로 비최든가
많을듯 적은말삼을 그대하소 하여라
마른잎 깔아놓은 뒤언덕을 뛰여채니
장하다 철원벌 눈아래 깔리는고
말달릴 젊은마음이 도로살아 오도다
발마초던 여섯거름 돌아서니 헡되여라
마음에 등을지니 그림잔들 위로되랴
뒷자최 애처러워라 더진듯걸어 가더라
궁예의 꿈을실흔 철원벌에 달만녀겨
흐린눈 떼여보니 다만한방 전등빛을
웃방에 누이의 숨소리는 들려들려 오더라
주석
安養寺道中 안양사(安養寺) 가는 길. '도중(道中)'은 길을 가는 도중, 곧 노상(路上)을 뜻한다. 절을 찾아가는 길에서의 정경을 적은 소제목.
궁예 궁예(弓裔, ?~918). 후고구려(태봉)를 세운 인물로, 철원(鐵原)을 도읍으로 삼았다. 철원벌이 그의 옛 꿈이 서린 땅임을 환기한다.
철원벌 강원도 철원(鐵原)의 너른 들판. 궁예가 태봉의 도읍을 정한 역사의 고장이다.
동기 동기(同氣). 형제자매를 이르는 말. 여기서는 '친동기처럼 정다운'의 뜻으로 쓰였다.
심상·해설
맑은 공기와 시냇물 소리 따라 안양사 길을 걷고 궁예의 옛 꿈이 서린 철원벌을 눈 아래 굽어보던 추억 끝에, 한밤 전등빛 아래 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정경이 향토적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