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랜더
나는 잘 기억한다 그대 웃으시던 양
바다 연한 모래 위에 그대 이름 쓰던 나 보고
「오— 어린애 같은!
돌 위에다 새기는 줄로 아네!」
그로부터 나는 조수도 씻어갈 수 없고
아직 낳지 않은 사람도 바다 건너 알아보고
아이안희—의 이름 다시 찾을 수 있게
그대 이름 써놓았네
칠십오 세 탄일에
랜도—
애쓸 값 있는 것 없으매 나는 애쓰지 않았네
자연을 다만 사랑했고 다음으론 예술…
생명의 불 앞에 두 손 쪼이다가
그 불 꺼지니 나는 떠날 차비 차렸네.
자랑 말씀
랜도—
일찍이 자랑 말씀 해본 적 없는 그대로도
다음 어느 날 이 「네 말씀」 말할 적에
눈물 젖은 더운 뺨 한 손 위에 얹으시고
나의 책 펴논 위에 말씀하리
「이」 「사람이」 「나」를 「사랑했다」—하고는
일어나 살짝 나가시리
로—즈 에일머
랜도—
아— 무얼 하리 임금의 겨레!
아— 다시없는 고운 모습!
곧은 마음 닦은 행동
로—즈 에일머 이 모두 그대 가졌던 것
잘못 이룬 이 눈으로
우는 수 있으나 보는 수 없는 로—즈 에일머
추억과 한숨의 하룻밤을
나는 그대에게 바치노라
주석
랜더 영국 시인 월터 새비지 랜더(Walter Savage Landor). 간결하고 고전적인 단시로 유명하다. 박용철이 그의 여러 짧은 시를 옮겼다.
자연을 다만 사랑했고 다음으론 예술 랜더의 유명한 묘비명 격 시 'Dying Speech of an Old Philosopher'의 한 구절. '나는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며 그다음으로 예술을 사랑했다'는 내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즈 에일머(Rose Aylmer) 랜더가 사랑했으나 인도에서 요절한 실존 여인. 그를 기려 쓴 짧은 비가 'Rose Aylmer'는 영시의 명편으로 꼽힌다.
아이안희 랜더의 시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Ianthe)을 우리말로 옮긴 것. 모래에 쓴 이름이지만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사랑의 대상이다.
심상·해설
바닷가 모래에 연인의 이름을 쓰는 늙은 시인의 손길과, 자연과 예술만을 사랑하다 생명의 불이 꺼지면 조용히 떠나겠다는 담담한 고별, 그리고 먼저 떠난 로즈 에일머를 향한 한숨이 잔잔하게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