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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1920년대

심

한용운 · 1920년대
심(心)은 심(心)이니라 심(心)만 심(心)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心)이니 심외(心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생(生)도 심(心)이오 사(死)도 심(心)이니라 무궁화(無窮花)도 심(心)이오 장미화(薔薇花)도 심(心)이니라 호한(好漢)도 심(心)이오 천장부(賤丈夫)도 심(心)이니라 신루(蜃樓)도 심(心)이오 공화(空華)도 심(心)이니라 물질계(物質界)도 심(心)이오 무형계(無形界)도 심(心)이니라 공간(空間)도 심(心)이오 시간(時間)도 심(心)이니라 심(心)이 생(生)하면 만유(萬有)가 기(起)하고 심(心)이 식(息)하면 일공(一空)도 무(無)하니라 심(心)은 무(無)의 실재(實在)오 유(有)의 진공(眞空)이니라 심(心)은 인(人)에게 누(淚)도 여(與)하고 소(笑)도 여(與)하나니라 심(心)의 허(墟)에는 천당(天堂)의 동량(棟梁)도 유(有)하고 지옥(地獄)의 기초(基礎)도 유(有)하니라 심(心)의 야(野)에는 성공(成功)의 송덕비(頌德碑)도 입(立)하고 퇴패(退敗)의 기념품(紀念品)도 진열(陣列)하나니라 심(心)은 자연전쟁(自然戰爭)의 총사령관(總司令官)이며 강화사(講和使)니라 금강산(金剛山)의 산봉(山峯)에는 어하(魚鰕)의 화석(化石)이 유(有)하고 대서양(大西洋)의 해저(海底)에는 분화구(噴火口)가 유(有)하니라 심(心)은 하시(何時)라도 하사하물(何事何物)에라도 심자체(心自體)뿐이니라 심(心)은 절대(絶對)며 자유(自由)며 만능(萬能)이니라

주석

심(心)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만물의 근원이자 일체를 이루는 본바탕으로 보는 유심(唯心) 사상의 핵심 개념.

신루(蜃樓) 신기루(蜃氣樓). 실제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헛것의 비유.

공화(空華) 허공에 핀 꽃, 곧 본래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상. 불교에서 망상·집착을 비유.

동량(棟梁) 기둥과 들보. 건물의 핵심 구조이자, 비유로는 중심이 되는 인물.

어하(魚鰕) 물고기와 새우. 산봉우리에 바다 생물의 화석이 있다는 것은 만물의 변천을 가리킴.

강화사(講和使) 전쟁을 끝내고 화친을 맺기 위해 보내는 사절.

심상·해설

삶과 죽음, 무궁화와 장미, 천당과 지옥, 산봉우리의 화석과 바다 밑 분화구까지 — 세상 모든 것이 오직 마음 하나에서 비롯됨을 선언하는 장대한 사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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