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휘트모어
월계수 그늘 짙은 잎새 아래
장미화의 새빨간 꽃잎 아래
여자의 아는 일 다 알아본
나는 몸을 펴고 누워 있네
사랑과 설움과 어머니 노릇
즐거움과 칭찬과 없이 여김—
이런 것은 여자로 태어난 이의
아무나 피치 못할 일이라네
내 손에는 보배 구슬 놓여 있고
위에는 높은 빗돌 세워졌네—
내가 잠들었다 울지 말게
나는 사랑에 어질었나니
저승의 사위잖은 꽃 사이로
회색 그림자 내가 걸어갈 제
나는 기쁘다네.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 다 가져 보았느니—
주석
휘트모어 원작자 휘트모어. 한 여인이 자신의 묘비 곁에서 사랑·슬픔·모성 등 여자의 한평생을 다 겪고 떠난 삶을 긍정하며 말하는 묘비명 형식의 시를, 박용철이 옮긴 것이다.
사위잖은 꽃 '사위다'는 불이 다 타서 재가 되거나 빛이 스러진다는 뜻으로, '사위잖은 꽃'은 시들지 않는 저승의 꽃을 가리킨다.
빗돌 글을 새겨 세운 돌, 곧 비석(碑石).
심상·해설
묘비 아래 누운 여인이 사랑도 슬픔도 모성도 다 겪었으니 슬퍼 말라 이른다. 시들지 않는 저승의 꽃 사이를 회색 그림자로 거니는 한 생의 평온한 마무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