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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든 말
1920년대

사랑하든 말

박용철 · 1920년대
내가 그날에 사랑해 만지든 말이 이제 내 눈앞에 있다, 그 털의 윤택함 빛나는 흰눈자위 뒷다리의 탐스러움 자랑스럽든 그태도를 어디하나 남겨있진 않으나, 나는 다만 깊이백인 사랑의 총명함으로 알아볼수 있느니. 여기 멍에아래 마차 끄으는 추레한 말은 그시절 봄날빛아래 금잔디 넓은 마당에서 호─롱소리치며 네굽놓고 달리다가 가볍게 잔걸음 놓든 그 아름답든 나의사랑하든 망아지 그놈이다. 저의 두눈은 굴러 하늘을 쳐다볼 생각도없이, 저의 네발은 땅에서 두자 뛰어오를 기운도없이, 쉴틈없이 내리는 채찍에 몰려다니다가는 목에 여물통을 건대로 배채울것을 먹고있다. 나는 넘쳐오르는 가슴과 떨리는 주먹으로 들여다보며, 눈을 감지도못하고 깊고높은 하늘로 돌려버리도 못한다. (沈痛篇에서)

주석

깊이백인 '깊이 박힌'의 옛 표기. 마음에 깊이 새겨진.

네굽놓고 네 발굽을 모두 놓아 마음껏 내달리는 모양. 망아지가 자유롭게 뛰던 모습.

두자 길이 단위로 한 자는 약 30cm. '두 자'는 약 60cm.

沈痛篇 (침통편) 박용철의 연작 시편 제목. 깊고 아픈 슬픔을 담은 편이라는 뜻.

심상·해설

봄날 마당을 자유로이 달리던 망아지가 이제 멍에를 쓰고 채찍에 몰리는 추레한 말이 되어 있는 모습을,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는 안타까운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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