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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1930년대

괴테

박용철 · 1930년대
아는가 그대 남녘의 나라 시트론 꽃이 피고, 어둔 잎 그늘에 금빛 오렌지 빛이 나고, 다스한 바람 푸른 하늘로 불어 내리고, 미르테 고요하며 월계수 높이 서 있는 나라― 그대여 이를 아시는가? 그리로, 그리로! 그대와 같이, 나의 사랑하옵는 이여, 가고지워라。 아는가 그대 그 집은 지붕 아래 둥글은 기둥, 쌀롱은 어른거리며 방은 환하게 밝고, 대리석상들 그대로 서서 나를 바라다보고, 불쌍한 아이야, 사람이 너를 어찌나 했느냐?― 그대여 이를 아시는가? 그리로, 그리로! 그대와 같이, 나를 가려주옵는 이여, 가고지워라. 아는가 그대 거기 산들과 구름에 잠긴 길들을, 안개 가운데 나귀는 길 찾아 나가고, 몇백 년 묵은 이무기 겨레 굴속에 살고, 바위 사오납고 그 위로 물 넘쳐가는― 그대여 이를 아시는가? 그리로, 그리로! 우리의 길을, 오―나의 아버지시여, 가고지워라. 미뇽의 노래 • 2 묻지랑은 말아요 이대로 두지 이를 감추는 의무인 것을. 내 가슴 펼쳐 네 앞에 뵀으면, 허나 운명이 허락지 않음을. 바른때 오면 솟우는 해는 어둔 밤 쫓고 밝은 빛 낸 것을. 굳은 바위도 가슴 열면은 숨긴 샘 땅에 앗기지 않을걸. 사람마다 벗님의 팔에 쉬여 안기여, 눈물에 사정을 펴기도 하련만. 어찌한 맹세라 입술 굳이 닫히여 하늘이 오직 열어준다니 미뇽의 노래 그리움의 뜻을 아는 이라야 나의 슬픔을 알 수 있어라 세상 모든 즐거움에서 호올로 멀리 떠나 있어 저편 하늘만 바라보나니 아― 나를 알고 사랑하는 분 예서 멀리 계시어라 정신 어지러워 아찔해지고 나의 애는 끊어져 버리어라 그리움의 뜻을 아는 이라야 나의 슬픔을 알 수 있어라. 거친 들의 장미 저 아이 보아 장미화를 보았어라 거친 들에 홀로 핀 장미화를 가지 피어 곱고 새틋한 양 가까이 보려 달음질 뛰어갔네 보고 나니 기쁜 정 넘치어라 장미화 장미화 붉은 장미화 거친 들에 붉은 장미화. 아해 말이 내 너를 꺾을란다 거친 들에 피어난 장미화야 장미 대답 나는 너를 찌를란다 네 맘에 나를 영영 못 잊도록 나도 그냥 있진 않을 테야 장미화 장미화 붉은 장미화 거친 들에 붉은 장미화. 그 아해는 함부로 손에 대여 들에 핀 그 장미를 꺾었어라 장미도 지지 않고 찔렀으나 울어도 소리쳐도 쓸데없어 장미는 할 수 없이 꺾인 것을 장미화 장미화 붉은 장미화 거친 들에 붉은 장미화 이별 눈으로 이별은 전하게 하소 입에 무슨 말 차마 할는가 오 어려움 이를 참기 어려움 나도 씩씩한 사나이거늘. 가장 달콤한 사랑의 노름 이때는 그마저 설운 짓이어 네 입에 키스도 싸늘하거든 서로 잡은 손 힘이 없거든. 얼핏 숨어 건네던 너의 키스 내 마음 참으로 날뛰더니라 이른 봄 꺾은 들마꽃 하나도 우리 기쁨의 샘이던 것을. 내 이제 꽃테를 아니 만든다 널 위해 장미를 꺾지 않는다 이것이 봄이라냐 내 사랑아 내게는 설은 가을인 것을. 해금 타는 늙은이의 노래 눈물에 섞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이는 괴로운 여러 밤을 자리에 일어앉아 느끼는 울음 속에 새워보지 못한 이는 하늘서 내려온 힘아 너희를 모르리라. 우리를 세상으로 이끌어 들여오고 불쌍한 사람들을 죄짓게 하여두고 마침내는 괴롬 속에 떨어트리나니― 죄는 이생에서 보복을 받는 것이니라 멀리 간 이에게 그래 참말 너를 잃었단 말인가 그래 사랑아 나를 버리고 갔단 말인가 말씀 한마디 마디 소리의 높고 낮음 귀에 익어 지금도 들리는 듯한 것을 푸른 공중 높은 데 몸을 숨겨 종달새 노래 요란히 울리면 나그네의 눈을 헛되이 아침 하늘을 찾아 헤매임같이. 나의 눈은 애써 찾는다 들로 덤불로 나무숲으로 내 노래는 모두 너를 찾아 부른다 오 나라 사랑아 내게로 돌아오라. 투―ㄹ레의 임금 옛날 투―ㄹ레 한 분 임금은 죽도록 변치 마잔 마음이러니, 그 아내 먼저 세상 버리며 금술잔 하나를 남겨드리다. 그 잔을 다시없이 귀히 여기어 잔치마다 임금은 그를 기울여, 그 잔에 술 부어 마실 때마다 눈물만 눈에 넘쳐흐르다. 늙으신 임금 죽을 날도 머지않아 그는 고을과 나라 모두 헤아려, 남김없이 아들에게 물리었으나 금잔은 따로이 남기어 두다. 바닷가에 선 높은 성 위에 조상들 그림 걸린 큰 마루에서 왕의 잔치를 그는 베푸다, 모시는 기사들 둘러앉히고. 늙으신 임금은 일어서시어 생명의 불을 마지막 마시고, 그리고는 거룩한 그 잔을 눈 아래 바닷물에 내어던지다. 그 잔이 굴러 떨어져 물 들어, 바다 깊이 가라앉음을 보고, 그의 눈은 그만 내려감기어, 다시는 한 방울 술도 아니 마시다. 냇가에서 흘러가 버리거라 내 사랑하는 노래들아 잊음의 큰 바다로 가버리거라 너를 부르는 즐거운 젊은이도 꽃 시절에 색시도 다시는 없으리니. 너희는 다 내 사랑을 노래 부르는 노래이거늘 제가 이제 내 진정을 없이 보는구나 너희는 물 위에 씌어진 노래일다 한없이 물을 따라 흘러가려무나. 애수 시들어버리느냐 고운 장미야 내 사랑의 머리에 꽂혀보든 못하더냐 아―피려무나 희망을 잃은 나에게 슬픔에 맘이 터지는 나를 위해 저 날을 생각하느니 슬픔이라 천사야 내 몸 네게 기대이고 맨 처음 핀 봉오리 두루 찾으며 이른 아침 뒤뜰을 거닐었더니 있는 꽃 있는 열매 모조리 너의 발치에 가져갔더라니 너의 얼굴 앞에 서 있을 때면 희망이 가슴에 굽이치더라니 시들어버리느냐 고운 장미야 내 사랑의 가슴에 달려보든 못하더냐 아―피려무나 희망을 잃은 나에게 슬픔에 맘이 터지는 나를 위해 노래하는 사람 성문 밖에 무엇이 들리느냐 다리 위에 나는 소리 무엇이냐 이 너른 방장 안에 불러들여 우리 앞에 저 노래 다시 아뢰라 왕의 말씀 따라 시동은 달렸다 그 아해 돌아오자 왕의 말씀이 늙은이를 안으로 들게 하여라. 인사드립니다 귀하신 여러분네 인사드립니다 고우신 아낙네들 그 이름을 누가 다 아오리까 훌륭하온 하늘의 별과 별들! 찬란한 꾸밈에 넘치는 이 자리여 내 눈아 감았으라 놀라며 즐거워할 틈은 이제 없으리니. 노래하는 사람은 눈을 감고 높은 목소리로 한 자리 불렀더라 기사들은 용기를 돋아내고 부인네들 눈을 내리 숙이더라 임금님은 이 노래가 대단히 맘에 드셔 그를 아뢴 상급으로 황금 사슬을 가져다 주라셨다. 내게 황금 사슬이 맞지 않소 기사 여러분께 내려지이다 저분들 용감한 얼굴 앞에 적이 던지는 창도 부서집니다 그 사슬을 대신에게 주옵소서 달리 무거운 짐들 가진 위에 황금의 짐을 다시 지워지이다. 나는 나뭇가지 속에 깃들였는 새와 같이 노래할 뿐이옵니다 목에서 울려 나는 이 노래가. 내게 더함없는 상급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원하온다면 황금 잔에 가장 좋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어주게 하옵소서. 입술에 대여 그 잔을 다 마시고 오 훌륭한 감로의 맛이여! 이 술 같은 것은 하찮은 축에 드는 복 많으신 이 궁궐에 새 복을 비옵니다 길이 향락하옵는 중 저를 생각하옵소서 제가 이 한 잔에 감사를 드림같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소서. 밤 노래 부드러운 자리로부터 꿈 가운데 반쯤 귀를 기울이라 나의 울리는 거문고 소리 따라 잠자거라 다시 무엇을 바라느냐 나의 아뢰는 거문고 소리에 별의 무리는 축복해 주노나 영원한 감정을 잠자거라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영원한 감정은 높고 거룩한 데 나를 올려주노나 이 땅의 혼란으로부터 잠자거라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이 땅의 혼란으로부터 나를 지나치게 떼어놓아 이 찬 곳에 나를 몰아넣노나 잠자거라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이 찬 곳에 나를 몰아넣고 너는 다만 꿈 가운데 귀 기울이노나 아 부드러운 자리 위에 잠자거라 다시 무엇을 바라느냐. 목양자 양치는 게으름뱅이 양 보기 나는 몰라 세상 제일 늦잠보 여자에란 할 일 없어 이런 놈도 외롭다고 잠과 먹성 달아났네. 외진 곳을 찾아가서 밤이면 별을 세고 울어 진정 야위었다네. 그러던 색시 제 말 듣자 마시기 먹기 자기 모두 전날 돌아왔네.

주석

괴테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 이 묶음은 박용철이 옮긴 괴테 시 번역집으로, '미뇽의 노래', '거친 들의 장미', '툴레의 임금' 등 대표작이 실려 있다.

미뇽의 노래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소녀 미뇽이 부르는 노래. '아는가 그대 남녘의 나라'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동경의 시가 가장 유명하다.

시트론·미르테·월계수 시트론은 레몬류의 과실나무, 미르테(도금양)와 월계수는 지중해 남유럽의 상징적 식물로, 미뇽이 그리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나타낸다.

거친 들의 장미 괴테의 시 'Heidenröslein'.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들장미'로도 널리 알려졌다. 소년과 들장미의 문답 형식을 띤다.

툴레(Thule)의 임금 괴테의 발라드. 세상 끝의 나라 툴레의 왕이 죽은 아내가 남긴 금잔을 평생 간직하다 임종 때 바다에 던지는 사랑과 정절의 이야기.

해금 타는 늙은이의 노래 역시 '빌헬름 마이스터'에 나오는 노수금(竪琴, 하프) 타는 노인의 비가. 원문의 해금은 하프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심상·해설

레몬 꽃 피는 남쪽 나라를 향한 미뇽의 사무친 그리움에서, 거친 들에 홀로 핀 붉은 장미, 죽은 아내의 금잔을 바다에 던지는 늙은 왕에 이르기까지, 괴테 서정시의 빛나는 장면들이 잇따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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