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고시
내가 겨우 다섯 살 난 아이 적에,
그 뒤 얼마 안 계셔 돌아가신 어머니
보드럽고 차가운 손끝으로 날 안아,
높다랗게 쳐드시어,
대청 벽을 바른 금빛 종이꽃에
마침내 나의 어린 손이 닿았을 적엔,
어찌나 호기롭고, 키도 커 보이던고!
아— 그 한때야말로!
『이 빛나는 튤립은 네 것 삼아라,
아주 꼭 네 것』이라고 말하시더니;
그때부터 내 것이 된 그 표적은
붉은 대로 남았고나.
바닥에선 내게는 그 꽃 잘 뵈지 않아
그 빨간 표를 손에 쥐려 보챘었나니
이처럼 귀한 예물이 내 것 되어본 적
일찍 한번 없었거든
벽에 바른 한낱 종이 튤립
누가 따로 갖고저 할 것도 아니언만
밖에 있는 온 것보다 내게는 훨씬
중하게 보였더니.
참꽃들 참 장난감 헤픈 사랑으로
내 앞에 뿌리듯 주었으나 이 모든 것
나의 손 닿는 밖에 섰는 이 예물 앞에
빛을 잃어 지더니.
아— 이제 때는 저의 할 짓 다하여
내 맘을 갖고 놀고 내 눈을 어둡혔으나
꼬여가는 이 튤립 보느라면 나는
살가웁도 못하느니.
아직도 애태고 붙잡는 손에 닿지 아녀
빠져 달아나는 타는 듯한 이 꽃은
내 손 속에 쥐인 정말 장미보다
더욱 빛나 보이느니.
나의 날 적부터 이젯것 이러했고
앞으로 내 죽도록 또한 이러하려니
꽃 중에 가장 고운 꽃 저 별들은
하늘을 꾸몄니라.
주석
고시 박용철이 옮긴 외국 시로, '오래된 시' 혹은 원작의 제목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종이꽃에 대한 회상을 담은 번역시다.
대청(大廳) 한옥에서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넓은 마루.
참꽃 여기서는 종이꽃에 대비되는 '진짜 꽃'을 뜻한다. (본래는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살가웁다 여기서는 '아쉽다·서운하다'에 가까운 옛말로 쓰였다.
심상·해설
다섯 살 아이를 안아 올린 어머니의 차가운 손끝과 벽에 붙은 금빛 종이꽃, 빛바래 가도 진짜 장미보다 빛나는 그 꽃이, 끝내 손에 닿지 않는 하늘의 별로 이어지며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