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알 수 없어요
바람도없는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최입닛가
지리한장마끝에 서풍(西風)에 몰려가는 무서운검은구름의 터진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얼골입닛가
꽃도없는 깊은나무에 푸른이끼를거쳐서 옛탑(塔)위의 고요한하늘을 스치는 알수없는향기는 누구의입김입닛가
근원은 알지도못할곳에서나서 돌부리를울리고 가늘게흐르는 적은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노래입닛가
연꽃같은발꿈치로 가이없는바다를밟고 옥(玉)같은손으로 끝없는하늘을만지면서 떨어지는날을 곱게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닛가
타고남은재가 다시기름이됩니다 그칠줄을모르고타는 나의가슴은 누구의밤을지키는 약한 등불입닛가
주석
파문(波紋) 물결무늬. 잔잔한 물 위에 이는 물결 모양.
타고남은재가 다시기름이됩니다 다 타버린 재가 다시 등불의 기름이 된다는 역설로, 소멸이 곧 새로운 헌신·재생의 시작임을 함축하는 이 시의 핵심 구절.
심상·해설
떨어지는 오동잎, 구름 틈의 푸른 하늘, 옛 탑을 스치는 향기, 굽이쳐 흐르는 시내, 저녁놀이 모두 '누구'의 자취인지 묻는 가운데, 다 타고도 다시 타오르는 마음이 밤을 지키는 등불로 남는 신비로운 정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