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정지용 시집/발문
천재 있는 시인(詩人)이 자기의 제작(制作)을 한번 지나가버린 길이오 넘어간 책장같이 여겨 그것을 소중이 알고 앨써 모아두고 하지않고 물우에 떠러진 꽃잎인듯 흘러가 버리는대로 두고저 한다하면 그 또한 그럴듯한 심원(心願)이리라 그러나 범용(凡庸)한 독자(讀者)란 또한 있어 이것을 인색한사람 구슬 갈므듯 하려하고 「다시또한번」을찾어 그것이 영원한 화병(花甁)에 새겨 머믈러짐을 바라기까지 한다.
지용의시(詩)가 처음 조선지광(朝鮮之光)(소화이년이월(昭和二年二月))에 발표(發表)된 뒤로 어느듯 십년(十年)에 가까운 동안을 두고 여러가지 간행물(刊行物)에 흩어저 나타낫던 작품(作品)들이 이시집(詩集)에 모아지게 된것은 우리의 독자적심원(獨自的心願)이 이루어지는 기쁜일이다. 단순(單純)히 이기쁨의 표백(表白)인 이발문(跋文)을 쓰는가운대 내가 조금이라도 서문(序文)스런 소리를 느려놀 일은 아니오 시(詩)는 제스사로 할말을 하고 갈 자리에 갈것이지마는 그의시적발전(詩的發展)을 살피는데 다소(多少)의 연대관계(年代關係)와 부별(部別)의설명(說明)이 없지못할것이다.
제이부(第二部)에 수합(收合)된것은 초기시편(初期詩篇)들이다 이시기(時期)는 그가 눈물을 구슬같이 알고 지어라도 내려는듯하든 시류(時流)에 거슬려서 많은 많은 눈물을 가벼이 진실로 가벼이 휘파람불며 비누방울을 날리든 때이다.
제삼부(第三部) 요(謠)는 같은시기(時期)의 부산(副産)으로 자연동요(自然童謠)의 풍조(風調)를 그대로 띤 동요류(童謠類)와 민요풍시편(民謠風詩篇)들이오.
제일부(第一部)는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改宗)한 이후 촉불과손, 유리창, 바다•1등(等)으로 비롯해서 제작(制作)된 시편(詩篇)들로 그 심화(深化)된 시경(詩境)과 타협(妥協)없는 감각(感覺)은 초기(初期)의 시작(詩作)이 손쉽게 친밀(親密)해질수 있는 것과는 또다른 경지(境地)를 밟고 있다.
제사부(第四部)는 그의신앙(信仰)과 직접(直接) 관련(關聯)있는 시편(詩篇)들이오.
제오부(第五部)는 소묘(素描)라는 제(題)를 띠였든 산문이편(散文二篇)이다.
그는 한군대 자안(自安)하는 시인(詩人)이기 보다 새로운 시경(詩境)의 개척자(開拓者)이려한다. 그는 이미 사색(思索)과 감각(感覺)의 오묘(奧妙)한 결합(結合)을 향해 발을 내여 드딘듯이 보인다. 여기 모인 팔십구편(八十九篇)은 말할것없이 그의 제일시집(第一詩集)인것이다.
이 아름다운 시집(詩集)에 이 졸(拙)한 발문(跋文)을 부침이 또한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불려지기를 가만이 바라며-
주석
지용 정지용(鄭芝溶, 1902~1950). 1920~30년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 이 글은 그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1935)에 박용철이 붙인 발문이다.
朝鮮之光 조선지광(朝鮮之光). 1922년 창간된 종합 잡지로, 1920년대 문예 작품이 다수 발표되었다.
昭和二年二月 소화(昭和) 2년 2월, 곧 1927년 2월. '소화'는 일본 연호로, 소화 원년이 1926년이다.
跋文 발문(跋文). 책 끝에 본문 내용이나 간행 경위 등을 적은 글. 머리에 두는 서문(序文)과 짝을 이룬다.
촉불과손, 유리창, 바다•1 정지용의 대표작 「촛불과 손」, 「유리창」, 「바다·1」 등 가톨릭 개종 이후의 시편을 가리킨다.
謠 요(謠). 노래 가락을 띤 시, 곧 동요·민요풍의 시편을 묶은 부(部)의 이름.
素描 소묘(素描). 사물을 간략히 그려 내듯 적은 짧은 산문. 여기서는 정지용 산문 두 편의 제목.
심상·해설
물 위에 흘러가 버릴 꽃잎 같은 시들을 영원한 꽃병에 새겨 모은 첫 시집을 펼쳐 들고, 눈물을 비눗방울처럼 가벼이 날리던 벗 정지용의 시 세계를 애정 어린 눈길로 더듬는 정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