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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1930년대

길

김기림 · 1930년대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주석

상여(喪輿) 주검을 묘지로 나르는 가마.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를 가리킴.

모래둔 모래가 쌓여 이룬 언덕, 곧 모래 둔덕.

동구(洞口) 마을로 드나드는 어귀.

심상·해설

어머니의 상여가 넘어가던 언덕길과 조약돌처럼 잃은 첫사랑을 품은 강가에서, 늙은 버드나무 밑에 서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멍하니 기다리다 어둠이 눈물 자국을 씻어 주는 유년의 상실과 그리움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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