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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풍속
1930년대

태양의 풍속

김기림 · 1930년대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려오마. 나의 마음이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 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쫓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청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 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魚族)들의 아침을 데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詩). 태양일 수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밤을 새워 가며 기다린다.

주석

목통 목구멍, 또는 소리를 내는 목의 통로. '두루미의 목통을 빌리겠다'는 두루미처럼 멀리·우렁차게 태양을 부르겠다는 뜻이다.

방청 방의 처마 끝, 또는 방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보이며, 여기서는 마음속 풍경의 한 자리를 이른다.

어족(魚族) 물고기 무리를 뜻하는 한자어. '어족들의 아침'은 바닷속 생명들이 깨어나는 싱그러운 아침을 비유한다.

심상·해설

어두운 병실에 누워 태양을 어머니이자 희망으로 부르며, 마음속에 작은 궁전을 세우고 밤새 아침의 빛을 기다리는 간절하고도 밝은 동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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