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싸움
늙은 병사가 있어서
오래 싸웠는지라
온몸에 상처를 받고는 싸움이 싫어서
군기(軍器)를 호미와 괭이로 갈았었다.
그러나 밭고랑은 거세고
지주는 사나우니
씨를 뿌리고 김을 매어도
추수는 없었다.
이에 늙은 병사는
답답한 회포에 졸려서
날마다 날마다 낮잠을 자더니
하루는 총을 쏘는 듯이 가위를 눌렸다.
아─ 이상해라 이 병사는
군기(軍器)를 버리고 자다가
꿈 가운데서 싸웠던가
온몸에 멍이 들어 죽었다.
사람들이 머리를 비틀었다
자나 깨나 싸움이 있을진대
사나 죽으나 똑같을 것이라고
사람마다 두 팔에 힘을 내뽑았다.
(서울서)
주석
군기(軍器) 전쟁에 쓰는 병기, 무기.
회포(懷抱)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감정. 여기서는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심사.
가위를 눌렸다 자다가 무서운 꿈에 짓눌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가위눌리다'.
머리를 비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는 모양.
심상·해설
무기를 버리고 농사를 택한 늙은 병사가 메마른 밭과 사나운 지주 아래 시들다 꿈속 싸움에 멍든 채 죽고, 살든 죽든 싸움뿐이라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팔에 힘을 주는 비장한 우화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