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우리 오빠와 화로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永男[영남]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火[화]젓가락만이 불쌍한 永男[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卷煙[궐련]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永男[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 ─ 가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연기에 싸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永男[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製糸機[제사기]를 떠나서 백 장에 일전짜리 封筒[봉통]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永男[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封筒[봉통]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 ─ 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永男[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火[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永男[영남]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永男[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슳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永男[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동생
주석
피오닐(피오니르) 러시아어 'пионер(개척자)'에서 온 말. 소년단원, 곧 앞장서 나아갈 어린 일꾼을 뜻하며, 오빠가 어린 영남을 다정히 부르던 별명이다.
거북무늬 질화로 거북 등딱지 무늬를 새긴 질그릇 화로. 깨진 화로는 잡혀간 오빠를, 남은 부젓가락은 오누이를 상징한다.
그날 밤 그리로 들어가신 오빠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감옥(또는 유치장)에 들어간 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제사기(製糸機)·봉투 붙이기 실을 잣는 방직 기계와 봉투 붙이는 부업. 오누이가 공장과 가내 노동으로 고된 생계를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상·해설
오빠가 잡혀간 밤 깨진 거북무늬 화로 곁에서, 어린 남동생과 봉투를 붙이며 슬픔 대신 결의를 다지는 누이동생이 편지를 띄우는, 가난하지만 꺾이지 않는 장면이 또렷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