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참된 어머니가 되어 주소서
어머니
인편에 들으니
어머님께서는 마침내
쫓겨나셨다고요.
어머니
작년 이때
우리집 울 뒤 대추나무 가지에는
대추가 조롱조롱 빨갰을 때
눈등이 붓도록 우시면서도
나를 민며느리로 보내었지요.
그때에 어머님께서는
어머님의 머리 쪄서 판 돈으로
얼레빗과 참빗을 사서
이 딸의 고침 속에
깊이깊이 넣어주시며
가서 잘살아라! 부디 배 곯지 말아라!
이것이 마지막 부탁이었지요.
어머니
이 집에 온 후로 이 딸은
꿈이면 어머님과 대추나무를 보았지요
그리고 일하다가도 멍 하니 행길가를 바라보았답니다.
지나가는 낯선 손이
행여나 어머님이나 아닌가 하여서……
어머니
지금에 알고 보니
빚값에 이 딸을 파셨다고요
삼백 냥에 이 딸을 파셨다고요
그러고도 그 돈 한 푼 어머니 손에
못 쥐어 보셨다고요!
오! 어머니
저 푸른 하늘을 우러러 물어보세요
그리고 이 땅을 구르며 물어보세요
이런 억울한 일을 언제까지나 받아야 옳겠느냐고요?
어머니
이 딸은 X X 회의 한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젠
어머님도 대추나무도 그립지 않아요?
이 눈은 X X 회 때문에 빛나고요
이 팔 이 다리도 굵어지고 있답니다.
어머니
며칠 후에 내 동무가
그곳 갈 테니
부디 잊지 말고 회에 들어주세요
그래서 나의 참된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주석
민며느리 장래에 며느리로 삼으려고 어린 나이에 데려다 기르던 여자아이. 가난한 집에서 입을 덜기 위해 보내는 일이 많았음.
얼레빗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
참빗 빗살이 매우 가늘고 촘촘한 빗.
고침 옷고름을 이르는 옛말. 저고리의 깃을 여미어 매는 끈. (원문 '곳침')
삼백 냥 냥은 옛 화폐 단위. 딸을 팔아넘긴 빚의 값으로, 인신매매에 가까운 가난의 참상을 드러냄.
X X 회 일제강점기 검열을 피한 복자(伏字). 여성 노동자·농민의 권익을 위한 단체나 사회운동 조직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됨.
심상·해설
대추가 빨갛게 익던 날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빗을 사 넣어 보낸 어머니와, 삼백 냥에 팔려 간 딸이 마침내 운동 조직에 들어 어머니마저 불러 세우는 장면이, 가난의 참상과 각성의 의지로 교차하며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