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10년대
들
눈알을 굴려 하늘을 쳐다보니,
참 높구나, 가을 하늘은
멀리서 둥그런 해가 네 까만 얼굴에 번쩍인다.
네가 손등을 대어 부신 눈을 문지를 새,
어느 틈에 재빠른 참새놈들이
푸르르 깃을 치면서 먹을 콩이나 난 듯,
함박 논 위로 내려앉는다.
휘이! 손뼉을 치고 네가 줄을 흔들면,
벙거지를 쓴 꺼먼 허수아비 착하기도 하지,
언제 눈치를 챘는지, 으쓱 어깻짓을 하며 손을 젓는다.
우! 우! 건넛말 네 동무들이 풋콩을 구워놓고,
산모퉁이 모닥불 연기 속에 두 손을 벌려 너를 부르는구나!
얼싸안고 나는 네 볼에 입맞추고 싶다.
한 손을 젓고 말없이 웃어 대답하는
오오, 착한 네 얼굴.
들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어찌 마음이 없겠니?
덥고 긴 여름 동안 여위어온 네 두 볼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철둑에 선 나뭇잎들마저 흐드러져 웃는구나!
지금 네 눈앞에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오지게 찬 벼이삭이 누렇게 여물어가듯,
푸르고 넓은 하늘 아래 자유롭게 너희들은 자라겠지……
자라거라! 자라거라, 초목보다도 더 길길이.
오오! 그렇지만 내 목이 메인다.
바람이 불어온다.
수수밭 콩밭을 지나 네 논 두둑 위에로,
참새를 미워하는 네 마음아,
한 톨의 벼 알을 뉘 때문에 아끼는고?
주석
벙거지 예전에 군졸이나 하인이 쓰던 둥근 모자. 여기서는 허수아비가 쓴 모자.
철둑 철길이 놓인 둑.
심상·해설
높고 푸른 가을 들판, 참새를 쫓는 아이와 착한 허수아비, 모닥불 연기가 정겹게 어우러진다. 여무는 벼이삭처럼 자라거라 하는 다정한 응원 끝에 목이 멘다는 한 줄로 애틋함이 번진다.
낭독 지시
Style: 가을 들녘처럼 밝고 다정하게, 아이를 부르듯 정겹게, '목이 멘다'에서 살짝 잠기며 끝 물음은 나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