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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리의 순이
1900-1910년대

네거리의 순이

임화 · 1900-1910년대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그러면, 내 사랑하는 젊은 동무, 너, 내 사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누이동생 순이, 너의 사랑하는 그 귀중한 사내,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그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 기계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 언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청년과 너의 따듯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웠고, 언 밥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따듯한 품속에 안아주던 것은 오직 하나 거리에서 만나 거리에서 헤어지며, 골목 뒤에서 중얼대고 일터에서 충성되던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정열 그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괴로움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났더냐? 그러나 이 가장 귀중한 너 나의 사이에서 한 청년은 대체 어디로 갔느냐? 어찌된 일이냐? 순이야, 이것은 …… 너도 잘 알고 나도 잘 아는 멀쩡한 사실이 아니냐?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 이 눈물나는 가난한 젊은 날이 가진 불쌍한 즐거움을 노리는 마음하고, 그 조그만 참말로 풍선보다 엷은 숨을 안 깨치려는 간지런 마음하고, 말하여보아라, 이곳에 가득 찬 고마운 젊은이들아!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젊은 날을 부지런한 일에 보내던 그 여윈 손가락으로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튜럭」처럼 길거리를 휘몰아간다.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예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내일을 위하여 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내를 위하여,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을 위하여…… 이것이 너와 나의 행복된 청춘이 아니냐?

주석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린다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를 벽에 표시하며 헤아린다는 뜻. 곧 투옥됨.

심상·해설

눈보라 휘몰아치는 종로 네거리에서, 잡혀간 동지와 가난한 청춘을 향해 누이 순이를 부르는 외침이 뜨겁다. 슬픔을 딛고 다시 손잡아 골목으로 들어가자는 결의가 추운 거리를 데운다.

낭독 지시

Style: 누이에게 말 거는 다정함으로 시작해 분노와 호소로 차오르고, 끝 권유는 손 맞잡듯 단단하고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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