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10년대
월하의 대화
몇 시……
두 시.
삐걱! 뱃전이 울었다.
물결이 높지요!
달이 밝습니다.
바다가 설레를 쳤다.
얼마나 왔을까요?
반 넘어 왔습니다.
아직 조선반도는 안 보였다.
아버님이……
아니요, 조선이, 세상이,
달이 구름 속에 숨었다.
무서워요,
바다가?……
청년은 여자를 끌어안았다.
아아! 당신을……
나도 당신을……
둘이 함께 “인생도 없습니다.”
물결이 질겁을 해 물러섰다.
그 다음
여자가 어찌했는지,
청년이 어찌했는지,
본 이가 없으니, 울 이도 웃을 이도 없고,
나란히 놓인
남녀의 구두가 한 쌍,
갑판 위엔 유명한 춘화(春畫)가 한 폭 남았다.
―일봉이 좋기사 좋습디더
―아모덴 와? 없어 병이구마
삼등선실 밑엔 남도 사투리가 한창 곤하다.
어느 해 여름 현해탄 위,
새벽도 멀고,
마스트 위엔 등불이 자꾸만 껌벅였다.
주석
춘화(春畫) 남녀의 정사를 그린 그림. 여기서는 갑판 위에 남겨진 두 사람의 흔적을 빗댄 표현.
현해탄 부산과 일본 규슈 사이의 바다. 식민지 시절 도일(渡日)의 길목.
일봉 '일본(日本)'의 사투리 발음. 본문 사투리 대사.
마스트 배의 돛대.
심상·해설
달 밝은 현해탄, 끌어안은 청년과 여자의 짧은 대화 끝에 나란한 구두 한 쌍만 남는 정사(情死)의 장면이 시린 여백으로 그려진다. 무심한 사투리 잠꼬대와 껌벅이는 등불이 비극을 더 쓸쓸하게 감싼다.
낭독 지시
Style: 두 시 밤바다처럼 낮게 속삭이는 대화체, 행 사이 한 박씩 멈추고, 끝 사투리는 나른하게 잦아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