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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1900-1910년대

상륙

임화 · 1900-1910년대
전차도 커지고, 자동차도 새로워지고, 삼층 사층 양실들이 곱다란 이 넓은 길이 어디로 통하는가? 정신을 차려라…… 클랙슨이 먼지를 풍기며 노호(怒呼)한다. 인제 부산도 옛 포구가 아니다. 트럭이 지냈는가 하면, 자동차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스톱! 하늘엔 여객기의 통과다. 정녕 나는 연락선에서 들고 내린, 묵은 가방을 털어보아야 할까보다. 몇 해 전 가지고 건너갔던 때 묻은 선입견이 남은 모양이다. 부두의 딸가닥 소리가 사람들을 놀랜 것은 벌써 옛 목가(牧歌)로구나. 내가 입고 자란 옷, 주절대고 큰 말소린 하나도 찾을 길이 없다. 나는 고향에 돌아온 것 같지도 않고, 아, 고향아! 너는 그 동안 자랐느냐? 늙었느냐? 외방 말과 새로운 맵시는 어느 때 익혔느냐? 벌렸다 다물고, 다물었다 벌리는, 강철 개폐교(開閉橋) 이빨 새에 낡은 포구의 이야기와 꿈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리라만, 그렇다고 나는 저 산 위 올망졸망한, 오막들의 고달픈 신음 속에, 구태여 옛 노래를 듣자 원하진 않는다. 나의 귀는 신음과 슬픈 노래에 너무나 찌들었다. 비록 오는 날, 나의 조상들의 외로운 혼령이 잠시 머무를 한낱 돌이나 나무가 없고, 늘비한 굴뚝이 토하는 연기와 그을음에, 흰 모래밭과 맑은 하늘이 기름걸레처럼 더러워진다 해도, 아아, 나는 새 시대의 맥박이 높이 뛰는 이 하늘 아래 살고 싶다. 연기들은 바람에 날리면서도, 끝내 위로 높이만 오르는 저 하늘 한복판에, 나는 오는 날의 큰 별을 바라본다. 행인들아! 그대들은 이 포구의 흰 모래가 시커멓게 변한 위대한 내력을 아는가? 나는 제군들 모두의 손을 잡고, 아, 친애의 정을 베풀고 싶다. 일찍이 저 시커먼 큰 건물들은, 제군들의 운명을 고쳤으나, 이내 제군들이 아름다운 항만의 운명을 개척할 새 심장이, 또한 저 자욱한 건물들 속에서 만들어짐은 즐거웁지 않으냐. 나의 고향은 이제야, 대륙의 명예를 이을 미더운 아들을 낳았구나. 바다에는 기폭으로 아로새긴 만국지도, 거리엔 새 시대의 왕자 금속들의 비비대는 소리. 목도(牧島) 앞뒤엔 여명이 활개를 치고 일어나는 고동 소리, 이따금 현해 바다가 멀리서 사자처럼 고함치며 달려오고…… 바야흐로 신세기의 화려한 축제다. 누가 이 새 고향의 찬미가를 부를 것이냐? 교향악의 새 곡조를 익힌 악기는 어느 곳에 준비되었는가? 대양, 대양, 대양, 실로 대양의 파도만이 새 시대가 걸어가는 장엄한 발자취에 행진곡을 맞추리라.

주석

연락선 해협을 사이에 둔 두 곳을 정기로 오가던 배. 여기서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던 관부연락선.

목가(牧歌) 전원의 한가로움을 노래한 시. 여기서는 평화롭던 옛 정경의 비유.

개폐교(開閉橋) 다리 한쪽이 들렸다 닫혔다 하며 배를 통과시키는 다리. 도개교. 부산 영도다리를 가리킴.

목도(牧島) 부산의 섬 영도(影島)의 옛 이름.

현해(玄海) 현해탄. 부산과 일본 규슈 사이의 바다.

심상·해설

옛 포구가 사라지고 전차와 굴뚝으로 뒤바뀐 부산에 내린 화자가, 낯섦과 상실 너머로 새 시대의 맥박을 향해 가슴을 연다. 자욱한 매연 속에서도 대양의 파도가 울리는 행진곡을 듣는 벅참이 솟는다.

낭독 지시

Style: 분주한 항구처럼 빠르고 힘차게 몰아치되 '고향아' 부르는 데서 잠시 그립게, 끝 행진곡 대목은 웅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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