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유모 강씨의 상행을 보내면서
三, 유모 강씨(乳母姜氏)의 상행(喪行)을 보내면서
내 젖엄마는 그 시집이 교하(交河)다。우리 집에 들어와서 얼마 있다가 다시 교하로 가더니 내가 보고 싶어서 도로 뛰어나와 첫새벽에 경기 감영(京畿監營) 앞을 지나 성문 열자 곧 회동(會洞)으로 왔다。내가 열한 살에 양근(楊根)으로 내려가 다시 진천(鎭川)으로 가니 엄마는 서울 처져 있었다。우리 집이 서강(西江)으로 온 뒤는 흔히 와 있더니 도로 진천으로 가니 진천은 멀어서 못 오고 목천(木川)으로 나오니 길이 좀 가까워 한동안이나 와 있었다。얼마 아니하여 우리가 또 서울로 오니 엄마 점점 늙었으나 내 아들딸을 보면 업어 주고 안아 주고 고달픈 줄을 몰랐다。돈화문(敦化門) 앞 서쪽 골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나를 보러 다녔다。내가 새문 밖 「초리우물」 옆에 살 제 엄마는 농포 안서 세상을 떠났다。발인이 경기 감영(京畿監營) 앞을 새벽에 지나는 것을 보고 나는 옛일을 생각하여 더 슬펐다。이 길이 그 길이다。그때 이 앞을 지나오던 그 모양이 보이는 것 같다。
一
칠십년 가진고생 다시없을 외론신세
숨질때 날찾다가 고만감아 버리단말
단하나 믿고바라던 그맘느껴 하노라
二
못참아 「왝왝」①하기 잘하고도 「유명지인」②
「허위」③는 고만이오 인정만하 병이랐다
두어라 다밉다해도 나는「구수」④ 하여라
註 ①자기 성미대로 아무 말이나 막 한다는 말。②별명난 사람。③남 주기 좋아한다는 말。④소박(素樸)한 맛。
三
「경툇절」① 「불공」갈제 나를어이 속였던가
놀다가 엄마생각 「베정적」②이 어제런듯
달래던 님안계시니 이제운들 뉘알리
註 ①정토사(淨土寺)의 음와(音訛)。②어린애가 생떼부리는 것。엄마가 정토사 불공 갔을 적에 내가 어찌 울었던지, 두 분 어머니가 「자개소반」에 밥을 차리어 나를 달랬다。
四
집조차 못지니고 다늙기에 곁방신세
「박동」서 적음보고 해진치마 속앓아라
그래도 될바랐더니 빈맘만이 남아라
五
보고자 보고자던 공능(恭陵)장터 「양완실」①이
찾아다 몹시잃고 일평생에 못이박혀
「저승」을 뉘믿으리만 모자만나 보는가
註 ①엄마의 아들 이름이다。우리 집에 들어온 뒤, 그 아들이 하도 보고 싶어서 국문(國文)을 배우면서 쓴다는 것이 「공능장터양완실이」 여덟 글자뿐이었었다。그 뒤에 데려다가 키우더니 장가까지 들여서 몹시 잃었다。
六
「사내」①라 술꾼이오 「딸」「아우」라 범연하다
거적에 싸다시피 막「꾸리어」 치어내니
내세던 젖먹인아들 얼굴없어 하노라
註 ①남편。
七
차디찬 단칸방에 밤중사경(四更) 누웠을제
목몇번 말랐던가 속쓰린들 뉘알았으리
마지막 하려던말도 있었을줄 아노라
八
사노라 내얽매어 범연한적 많았도다
「한만」한① 늙으니냥 오면오나 가면가나
「야속」②해 더설었을일 가슴뭉클 하여라
註 ①대수롭지 아니한。②섭섭하여 생기는 원망。
九
초종일 걱정하기 어이런줄 몰랐더니
저녁상 받고나니 눈물돌자 목이메어
가는「넋」① 섭섭다마소 내못「잊어」 하노라
註 ①혼백(魂魄)。
一○
「불공」도 즐기더니 반거의나 보살할멈
승행(僧行)야 있으리만 맘쎄로는 어여쁘다
죄없는 불쌍한「이넋」 존데가게 하소서
주석
상행(喪行)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는 행렬, 곧 발인 행렬.
유모(乳母) 젖어머니. 친어머니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길러 준 여인.
경기 감영(京畿監營) 조선 시대 경기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 지금의 서울 서대문 부근에 있었다.
사경(四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넷째 시각.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를 이른다.
공능(恭陵) 지명. 유모의 아들 '양완실'이 살던 장터가 있던 곳으로 글에 나온다.
보살 할멈 절에 다니며 불공을 돕고 살림을 거드는 늙은 여신도를 이르는 말.
심상·해설
평생 갖은 고생을 하고도 정 많고 소박했던 젖어머니의 상여가 새벽 감영 앞을 지나는 것을 보며, 단칸방에서 홀로 숨을 거둔 그 외로운 마지막을 떠올리고 죄 없는 넋이 좋은 곳에 가기를 비는 절절한 추모의 정이 사무친다.